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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형제복지원, 끝나지 않은 싸움

by 이음센터 posted Jun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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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끝나지 않은 싸움

 공태윤

 

 

불법감금,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500여건의 살인, 암매장...

 

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모두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참상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3년간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각종 범죄행위는 한 검사의 인지수사와 목숨걸고 탈출한 원생들에 의해 알려져 법의 심판대 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판 결과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되어 징역 26개월을 살았을 뿐이다. 대법원은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사회복지사업 등 법령에 따른 정당한 직무라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형제복지원1.png

[사진설명] , 형제복지원 농성장 앞 형제복지원 당시 사진 우,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기자회견(출처:비마이너)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내무부훈령 410호부터 경찰, 공무원에 의한 강제수용까지

 

그 정당한 직무의 근거는 바로 내무부훈령 410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이다. 박정희 정권인 197512월 제정된 이 훈령은 이른바 부랑인강제수용의 근거가 된다.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대 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대비해 대대적으로 거리정화사업이 진행되었고 형제복지원은 이러한 배경 하에 설립된 전국 36개의 부랑인 보호시설 중 하나이다. 당시 거리정화사업의 주체는 경찰과 관련 지자체 공무원으로 이들은 근무평점을 위해 거리를 지나던 시민과 하교하던 어린이들까지 무잡이로 잡아들였다. 끌려간 이들은 본인이 왜 끌려갔는지도 모른 채 무자비한 폭력과 배고픔, 강제노역에 놓여졌다.

 

피해당사자의 명예회복은 현재진행형, 배보상은 아직 요원

 

형제복지원은 1987년 폐쇄조치되었다. 원생들 중 일부는 다른 시설로, 일부는 귀가조치되었으며 형제복지원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형제복지원이 다시 회자된 것은 25년이 지난 2012, 피해생존자인 한종선님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2013년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인권침해 진상조사 및 배상 요구, 2017년 국회 앞 노숙농성, 2020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개정과 2021년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조사 착수까지 피해자들은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왔다. 언론에서 형제복지원을 집중조명하고 장애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았다. 이번 달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배보상은 아직 요원한 현실이다.

 

국회 탈시설전시회형제복지원과 탈시설지원법

 

형제복지원2.png

사진설명] , 형제복지원 건물들을 재현한 모형 우, 건물 앞 원생들이 나란히 앉아 지시를 받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지난 5월 국회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촉구를 위한 탈시설 당사자 편지 국회 전시회, 우리 함께, 살아나간다에서 피해생존자인 한종선님의 형제복지원 모형을 볼 수 있었다. 수용소 같은 회색조의 건물들, 건물 앞에 쓰인 소대간판, 건물과 대비해 파란색의 옷을 입고 도열한 원생들. 형제복지원과 장애인 거주시설은 다른 듯 같다. 건물색과 이름, 옷이 달라졌지만 집단거주라는 점에서, 강제노역이 사라졌지만 자기 의사와 상관없다는 점에서 또 같다. 탈시설지원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거주시설협회와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복지라는 이름 아래 격리, 수용되어야 하는 장애인들의 삶의 변화는 언제쯤 가능할지. 시기는 우리가 얼마나 싸우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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