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형 주거 공간 제공한다더니…
한 공간에 4명, 한 시설에 20명 이상
장애인들 “개 목줄 색깔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보건복지부가 소규모 장애인거주시설을 늘리는 내용의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장애인들은 “‘집단생활’이라는 시설의 구조적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좋은 시설 만들기’에 힘쓰는 내용이다. 국제적 기준을 거스르는 기만적 태도”라며 크게 반발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7일 오전 8시, 서울시 영등포구 9호선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박세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사무국장이 “시설수용은 선택이 아니라 차별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박세영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사무국장이 “시설수용은 선택이 아니라 차별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4명이 같이 사는데 ‘독립형’?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령안은 장애인 거주시설 유형으로 ‘독립형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을 신설하고 이에 대한 설치·운영 기준을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관련 자료: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복지부는 독립형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을 “장애인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여건을 제공하는 여러 개의 개별 주거 공간을 설치하고,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여 주거지원·일상생활지원·지역사회생활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라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서비스가 포함된 내 집 같은 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장애인에게 사적 공간을 보장하며 지역사회와 통합을 지향하”고자 이같이 개정한다고 밝혔다.

사적 공간을 보장한다지만 혼자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복지부는 독립형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의 규모를 “상시 20명 이상 생활할 수 있도록 복수의 개별 주거 공간을 마련하되, 각 주거 공간의 정원은 4명 이하를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독립적 주거 공간에는 침실(1인 1실 제공), 거실, 주방 공간, 화장실 등이 갖춰져야 한다. 여기서 최대 4명까지 같이 살 수 있으며, 이러한 주거 공간이 한데 모인 시설에는 20명 이상 단체로 거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령안 ‘규제영향분석서’ 비용편익분석에서 “추가적 비용 없이 거주 장애인의 편익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거주 장애인의 삶이 실제 크게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침실의 경우 1인 1실을 보장하겠다면서도 2인 1실 제공까지 열어뒀다. 수십 명이 한 공간에 거주하는 근본적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거주시설 전수조사’에 따르면 한 방에 평균 4.7명이 살고 있었다. 복지부는 이런 집단거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 주거 공간을 최대 4명까지만 쓰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외 조항을 둬서 한 방에 5명 이상 거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다만, 이용자의 동의를 받고, 시설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후,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개별 주거 공간의 정원을 5명 이상으로 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복지부는 ‘이용자의 동의를 받겠다’곤 하지만 시설거주 장애인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중증발달장애인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점을 고려할 때, 시설이 동의여부를 조작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우리는 시설 개선이 아니라 탈시설을 원한다! 시설 확대하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 반대 기자회견”의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우리는 시설 개선이 아니라 탈시설을 원한다! 시설 확대하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 반대 기자회견”의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들 “개 목줄 색깔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장애인들은 개정령안을 크게 비판했다. 탈시설연대는 “개정령안은 기존 시설의 구조만 변경하고 시설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이다. 이대로라면 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로부터의) 분리 정책은 절대 해결될 수 없다”며 “장애인은 여전히 집단생활로 자기 결정권이 박탈되고 개인의 삶이 없는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정부는 ‘독립형 서비스’ 운운하며 기존 시설에 투입되는 기능보강사업비를 대폭 늘릴 수 있다. 이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유엔위원회)의 권고를 전면 부정하는 행위다. 유엔위원회는 현존하는 시설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지역사회 자립생활 예산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정부는 이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격리와 배제, 거주시설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격리와 배제, 거주시설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시설에서 장기간 거주하다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는 “시설에서 15년을 살았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욕하고, 발달장애인이 의사 표현 못 한다고 폭행하고, 밖에 절대 내보내 주지 않았다. 내부고발자가 없는 이상 시설 문제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개정령안이 시행되지 않도록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지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지역사회 함께 살자”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하민지조상지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지역사회 함께 살자”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하민지

20년간 시설에 갇혀 살았던 탈시설연대 회원 조상지 씨는 “좋은 시설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 씨는 “사람은 경험 속에서 생각할 능력이 만들어지는데 시설은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경험하는 일들이 인간적인지, 비인간적인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며 시설 밖으로 나오면 개죽음당한다고 세뇌한다”면서 “좋은 시설과 나쁜 시설의 차이는 ‘마당에 묶어놓고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는 개’와 ‘집안에서 사료 먹는 개’의 차이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집 안에서 사료 줄 테니 계속 시설에 있어라’라며 장애인을 세상과 격리하는 것”이라면서 “까만색 목줄을 형광으로 바꾼다고 시설이 감옥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좋은 시설은 없다”고 성토했다.

탈시설연대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 보장이다. 이를 위해선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이 필요하다”라며 “해당 개정령안 시행을 막기 위한 의견서를 모아 복지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