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 박경인 씨가 오세훈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시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 개선안은 ‘시설수용 지원 절차’

[편집자 주] 서울시는 지난 2월 26일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안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탈시설을 희망하는 경우, ①의료진의 자립역량 조사 ②자립지원위원회의 퇴소 검토(거주시설+전문가) ③자립체험(5년간 자립 준비) ④자립역량 재심사(1년 단위)의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퇴소 후 모니터링 결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부적응”한다고 판단되면 시설에 재입소 될 수 있습니다. 즉, 탈시설 절차가 까다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탈시설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는 배제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는 올해 1900명의 자립역량을 조사합니다.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이러한 서울시의 정책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월 29일 시청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서울시 안은 “시설수용 지원 절차”라고 비판하면서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비마이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보낸 편지 전문을 싣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2월 26일 발표한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 개선안’. 서울시가 지난 2월 26일 발표한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 개선안’. 

오세훈 시장님에게

오세훈 시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박경인이라고 합니다.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 자기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단체입니다.

오세훈 시장님, 서울시장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떠세요? 방송에 얼굴이 나오고, 바깥에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삶이 행복하나요?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주목은 때로는 감금과도 같아요. 그러니 하루 24시간 내내, 평생을 갇힌 채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미혼모시설에 태어나 23살까지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많은 학대와 폭력에 맞서 살아왔어요. 제가 자립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그룹홈 선생님은 안 된다고 하셨어요. “밖에 나가서 어떻게 살 거냐. 혼자서는 못 산다.” 저는 그룹홈의 도움을 못 받고 자립해야 했습니다.

시설에서 나올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자립하는 걸 지원하는 제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가 그룹홈을 시설로 인정하지 않아 정착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일해서 번 돈과 수급비를 열심히 모아서 나왔어요. LH대출을 받아서 집을 힘들게 구했고, 살림살이를 살 때도 혼자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내 방이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 탈시설한 지 8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자립하고 제가 변한 게 있다면, 사람들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게 됐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어요. 저 사람이 나를 이용하면 어떡할까. 이 사람이 지금은 나와 함께 있지만 또 떠나겠지. 이런 생각이 많았어요.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고, 내 권리에 대해 알게 되고, 안정적인 일자리와 좋은 동료들이 생기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앞으로 시설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퇴소 절차가 더 어려워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저는 많이 분노했어요. 다른 장애인들은 저와 같은 고생을 하지 않고도 시설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어요.

서울시는 앞으로 시설을 나가려는 장애인은,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전문가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울시가 말하는 전문가란 누구인가요? 의료진, 지위가 높은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시설 원장님, 이런 사람들이 아닌가요?

오세훈 시장님이 ‘전문가’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은 이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처럼 힘이 없는 사람들은 차별과 눈치에 익숙해져서 ‘나는 못 할 거야’ ‘안될 거야’ ‘여기서 그냥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잃는 게 사람에게는 제일 무서운 일입니다. 반대로,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힘없는 사람들은 속이 터질 때가 많아요.

시설을 나가고 싶다는 제 말을 선생님들이 거절했을 때, 정말 숨이 막힐 만큼 힘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제가 혼자서 못살 거라고 했지만, 지금은 나와서 잘살고 있습니다. 그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저는 시설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저는 시설에서 오래 산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힘이 없지만, 제 경험을 통해 당사자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고, 그걸 사회에 알리는 사람입니다. 탈시설연대는 당사자의 말을 들어주는 곳입니다. 시설에서 산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저와 탈시설연대가 ‘전문가’입니다.

서울시가 자립역량을 평가하겠다는 것은, 능력 있는 사람들만 자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은 다 다른데 능력이라는 걸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이, 고작 한두 번 보고 나를 판단할 수 있다고 정말로 생각하세요?

2월 29일 시청역 승강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보낸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시는 자립을 잘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더 각박한 세상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장애인이 시설을 더 잘 나오게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오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문턱을 높이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나요.

서울시의 이러한 정책은 장애인의 인권을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입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시설을 더 이상 만들지 말고 모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님. 서울시장은, 장애인들이 시설을 안전하게 나올 수 있게 돕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안전함’이란 의료진이 보기에 내가 어떤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동네에서 잘 살아갈 수 있게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걸 말합니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그게 갖춰지지 않아서 힘든 거니까요.

지금도 지원주택이나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게 절차도 어렵고 집도 별로 없습니다. 서울시가 ‘자립역량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조차도 자립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시설에서 나오려는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더 잘 만들고, 그 정보를 장애인들에게 잘 알려주는 곳이 더 많아져야 할 때입니다. 복지관이나 시설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많아져야 합니다.

저는 서울시가 장애인의 죽음을 탈시설을 반대하는 핑계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도 화가 납니다. 시설에서 죽은 건 나 몰라라 하면서,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이 죽었을 때는 시설에서 안 살았으니까 이렇게 죽은 거라고 손가락질하지 마십시오. 서울시도 잘 알고 있듯이, 장애인들은 시설보다 자립생활을 더 원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와상장애인들도 시설보다 바깥이 훨씬 행복해 보여요.

오세훈 시장님,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자꾸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저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다 죽고 싶습니다.

서울시장이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시설을 운영하는 힘 있는 사람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지 말아주세요. 세상을 거꾸로 돌아가게 하지 않고, 세상을 바로잡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세훈 시장님이 일을 그만두실 때, 힘없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박수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박경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