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기사

“장애인운동 내 ‘열사’ 규정 없어, 시급히 논의 필요”

by 이음센터 posted Oct 2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장애인운동 내 열사규정 없어, 시급히 논의 필요

출범 10주년 맞은 장애해방열사_, 기념 토론회 개최

 

 

 

 

등록일: 20201015

 

 

 

 

1602761067_37738.jpg장애해방열사_단 10주년 기념 토론회가 15일 오후 2시 대학로 유리빌딩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왼쪽에서부터 박김영희 장애해방열사_단 대표, 김병태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회장,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사진 강혜민


장애해방열사_단(아래 열사_단)이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10년 전, 출범 당시 열한 분의 열사를 모시며 시작했으나, 현재는 마흔여 명에 이르는 열사와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열사_단 10주년 기념 토론회가 15일 오후 2시 대학로 유리빌딩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이원교 우동민열사추모사업회 회장, 이창훈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이 축사를 전했으며, 노동가수 박준이 축하공연으로 흥을 더했다. 

 

열사_단은 2010년 3월 26일 당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출범했다. 3월 26일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폭로하며 싸우다 2001년 숨진 최옥란 열사의 기일이다. 진보적 장애인운동 진영은 2005년부터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에 맞춰 ‘장애인대회’를 열고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집중 투쟁을 벌인다.

 

장애계는 84년 ‘서울거리에 턱을 없애주시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결한 김순석 열사를  장애해방열사의 시초로 본다. 이후 95년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이덕인 열사의 죽음이 있었으며, 2000년대 초 최옥란·정태수·박흥수 열사가 산화했다. 2010년 이후에는 열사보다는 장애인복지제도의 사각지대로 인해 안타깝게 숨진 ‘희생자’들이 더 많아졌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사이 숨진 김주영·송국현·오지석, 인천 해바라기시설에서 의문사한 이재진, 장애 의무 재판정 후 등급 외 판정을 받아 자결한 박진영 등이 있다.

 

1602761086_93979.jpg토론회장 한 벽면에는 장애해방열사·희생자 43명의 영정이 현수막으로 프린트되어 걸려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해방열사들이 기록되고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장애인운동 내에서 장애해방을 위해 그 삶을 온전히 쏟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해방’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날 ‘장애해방운동의 역사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발제한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해방’이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기에 그 해방의 실현태에 대한 보다 구체화된 상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면서 지난 30여 년간 이어져 온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짚으며 ‘장애해방’의 구체적 상을 그려나갔다.

 

김 연구활동가는 장애인운동의 흐름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세 시기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1기에는 노동 이슈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고용할당제를 통한 노동시장의 참여’처럼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 내에서의 장애인 지분 확보에 그쳤다. 반면 2기 장애인운동(2001~2007년)에서는 7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동권, 교육권, 차별금지, 사회서비스 등의 기본권 영역에서 급속적이면서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냈다. 서구의 장애인운동이 20~30여 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들을 단숨에 성취해낸 것이다. 이때 운동의 주체가 중증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3기(2008년 이후)에는 시설 문제가 과거의 ‘님비 대응 투쟁’과 ‘시설 민주화 투쟁’을 넘어 탈시설 투쟁으로, 노동 문제는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노동권의 공적 보장’을 제기하는 단계로 진전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김 연구활동가는 “장애해방의 ‘잠정적’ 실현태를 시설사회의 철폐와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구축(장애 배제적 노동사회의 철폐)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이는 노동 및 시설문제가 ‘장애인’이라는 범주 자체의 생성과 그 역사적 기원에 맞물려 있는 매우 근본적 의제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장애해방열사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온몸으로 밀고 온 이들이다. 따라서 열사_단이 지난 10년 간 주력한 활동은 △열사 및 희생자 추모제 △326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 기획 및 진행 △장애해방열사배움터 개최 △열사 자료 아카이빙이다.

 

박김영희 열사_단 대표는 “단순 추모제를 넘어 열사의 정신을 현장 활동가들에게 전파하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특히 열사 배움터는 신입활동가들이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그 속에서 장애해방열사와 희생자들의 삶과 정신을 되새김으로써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운동의 전망을 찾아가는 좋은 교육이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박김 대표는 “아직 진보적 장애인운동 내에서는 ‘열사’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2011년 1월 2일 돌아가신 우동민 열사 안장 이후 열사 추대는 중단된 상태”라면서 “열사_단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할 수도 없고 개별 추모단위의 책임과 의무도 있기에 구체적 논의를 아직까지 하지 못했다. 장애계 내에서 (가칭)장애해방열사추대위원회를 구성해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출처: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5178&thread=04r03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