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부모상담, 과도한 서류가 상담을 방해한다
상담형식은 계속 바뀌는데… 수년째 바뀌지 않는 ‘필수서류’들
서류는 많고 급여는 적고 지원은 없고… 과연 누가 계속하려 할까?
등록일: 2020년 10월 19일
보건복지부의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 사업’ 안내 일러스트.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며 받은 상처와 부담, 대한민국이 따뜻하게 안아드리겠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장애아동 부모님, 심리상담으로 위로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문구 아래에는 정장을 입은 부모와 치마를 입은 여성 상담자가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복지로 일러스트 캡처. https://bit.ly/34bgDB9
이번 10월 말에서 11월 초 경에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주관으로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 사업’ 제공인력에 대한 비대면 교육이 실시된다. 지난번 보수교육에서는 생애주기별 부모의 장애 수용과 도전적 행동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이번 교육에는 상담에 대한 사례 발표와 슈퍼비전이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사업 초기부터 참여했던 ‘제공인력’으로서 그간의 아쉬움과 불편함이 개선되기를 바라며 간단히 적어보려고 한다.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사업이 지속해서 탄탄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 상담형식은 계속 바뀌는데… 상담 기록하는 ‘필수서류’는 바뀌지 않아
원래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 사업은 당시 발달장애 자녀의 장애를 수용하는 일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한 부모와 조부모가 ‘동반자살’(장애자녀를 먼저 살해하고 자살)을 선택한 사건들에 대한 대책으로 시작된 서비스였다. 따라서 2013년 연구보고서를 쓰던 연구자들은 상담틀을 만들 때, 위기상담에 준하는 촘촘한 상담지원을 예상하고 무거운 상담을 다룰 수 있는 전문상담인력의 필요에 따른 체계를 제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담이라는 것은 주로 각 상담 이론에 기반을 둔 사설기관에서 제공되는 것이었고, 그런 상담자들은 장애, 발달장애(지적·자폐성장애)에 대한 이해가 적었다. 가족, 부모와 부부의 문제가 가진 무게를 이중, 삼중으로 다루는 연습이 충분히 된 상담자가 부족하였다. 더하여 공적인 복지서비스 체계의 복잡한 서류 절차를 받아들이고 이행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외국의 사례나 정연한 절차에 따른 중재전략이 현장에 와닿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마음과 몸이 바쁜 부모들은 자녀를 맡기고 상담실에 정기적으로 오가는 일을 해낼 여유가 없었다. 2개월 이상을 지속하지 못하면 상담서비스가 중단되고, 이후 2년간 다시 사용할 수 없는 페널티가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래서 부모심리상담지원이라는 것을 들어본 부모와 이를 시행하는 기관이 적은 상황은 자연히 계속되었다.
2016~2017년에야 발달바우처 제공기관에서 일정한 상담 자격을 가진 인력이 상담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가 되었다. 미술치료와 집단 상담, 부부와 가족 전체 상담도 가능해졌다. 접근 방법은 다양해졌지만 원래 목표한 것보다 가벼운 활동기반 프로그램에 가까워졌다. 이에 따라 ‘심리상담서비스’라는 명칭이 슬쩍 ‘상담지원’으로 변경되었다. 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상담자가 서비스 지원을 맡는 것이 해결책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기나 했었던가? 이 사업은 전국 사업으로 구현되어야 하는데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상담자가 없는 곳이 여전히 많다. 게다가 너무 허술해서 허탈한 지점은 2014년 형식 그대로 여전히 필수 문서가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치료 등의 도입으로 상담 형식은 바뀌었는데 이를 기록하는 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 월 16만 원의 상담바우처, 2년 받으면 지원 뚝…
무엇보다 이 상담지원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애부모들 자체가 그다지 힘 있는 내담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삶은 일상이 재난이며 눈물과 근육의 긴장과 긴 한숨과 애매한 몸짓이 엉키는 현현하는 고통이다. 그 실제를 ‘정신화’하여 상담자에게 말로 잘 전달할 힘이 그들에겐 없다. 그들의 삶에 떨어진 ‘죽음보다 더 큰 위기’를 헤쳐나가느라 벅찬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들리지 않는 그들의 말을 잘 알아주기 어렵다. 매 순간 상담은 흔들리고 방향을 잃는다. 그저 함께 부둥켜안고 우는 일이 태반일 수도 있다. 그래도 묵묵히 상담을 연장하여 2년을 버티다 보면 그제야 눈이 좀 열리거나 숨을 쉬게 되는 내담자도 있다. 결국은 지속적인 상담을 버틸 힘이 있는 ‘건강한’ 내담자가, 가족이 상담의 ‘이득’을 얻는다. 그러니 아마도 상담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상담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 상담바우처(월 16만 원)는 최대 2년까지만 지원받을 수 있으며 이후 2년간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왜 2년이 지나면 한동안은 다시 받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수혜’를 받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형평성’을 고려한 것일까? 중증발달장애 자녀를 둔 공황장애를 겪는 부모 한 사람이 다시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 내년 하반기에 기간 제한이 풀릴 것이다. 그때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발달장애인 부모에 대한 심리·정서적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 중 상담지원 사업의 세부 절차와 내용을 정리한 도표. 상담서비스는 접수면접, 초기상담, 중기상담, 상담종결 총 4단계로 이뤄지며 각 회기마다 과도한 양의 서류가 요구된다. 문제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현장에서 꾸준히 제기되었음에도 2020년 현재에도 내용과 형식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 현실 담지 못하는 서류 양식들, 오히려 상담을 방해한다
상담자는 매회기 써야 하는 상담기록지 안에 자신이 버텨야 하는 그 모호한 과정을 충분히 적지 못한다. 회기 기록지는 ‘인지심리학적’ 틀거리로 짜여 있어서 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쓰는 이에겐 익숙하지 않다. 상담자는 상담 중에 한 일과 별 상관없는 것을 적어야 할 수도 있다. 상담은 비밀유지가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바우처 안에 있는 서비스들은 ‘점검’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제대로 내담자를 공감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서 당황하고 무기력해졌을 상담자는 길고 어색한 틀의 보고서를 쓰는 수고를 매회기 해야 한다. 필수 문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나치게 세세하지 않아도 되니 간략 명료하게 ‘대충’ 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칸에 네 줄 이상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하라’는 기록지의 안내로 그 후부터는 아예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얘기를 건너들은 적이 있다.
부록으로 들어 있는 서류양식에는 ‘사례 개념화’ 과정을 적는 필수문서도 있고 각 회기를 연결하는 작업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은 너무 형식적이어서, 오히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중요하고 위급한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내담자들의 관심사와 필요는 그달에 생기는 사건 사고에 따라, 그의 마음속 폭풍에 따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커졌다 작아진다. 어떤 이는 죽음을 오가거나 가족 내 심각한 갈등이 늘 잠재한 위기상담이고, 어떤 이는 장애자녀와 다른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거나 잘하고 있는지, 지지가 필요할 뿐인 경우도 있다. 다른 이는 부부문제를 가져오기도 하며, 원가족 문제를 주섬주섬 꺼내기도 한다. 때로 아이에 대한 양육 정보가 필요해서 왔는데 왜 부부얘기를 하고 원가족 얘기를 해야 하냐고 뚱한 얼굴을 하는 내담자도 있고, 이혼을 위한 과정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내담자들이 매번 자기 주제로 돌아가 맴을 돌며 어려움을 겪더라도,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여 이를 다룰 분별력과 힘이 생길 때까지 그를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들은 문제의 명료화, 통찰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까다롭고 상처받기 쉬운 내담자들이다.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 사업에서 상담자가 필수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 중 하나인 사례개념화 요약지. 보건복지부의 ‘2020년 발달장애인 지원 사업안내’ 캡처
그러니 상담자는 끊임없는 공부와 동시에 상담이 잘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약간의 포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내담자가 모호하게 얘기해도 똑바로 알아들을 초능력이 필요하다. 이해가 왜곡되어 해석이 엉뚱한 것으로 바뀌면, 내담자의 얼굴이 금방 굳는다. “장애아이 키우는 제 말을 이해하시긴 어렵죠.” 차가운 평가가 두터운 방어의 펀치가 되어 날아온다. 그의 마음을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네, 제가 장애 쪽은, (법 절차는), (학교 행정은) 잘 몰라서요…” 말간 대답이 상담자의 용기 있는 직면이고 자기 노출이어도 어떤 내담자는 날카롭게 상처받은 얼굴로 마음이 굳어 무겁게 돌아앉는다. 어쨌든 조금은 도움 되었다고, 우리 사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아니냐며 홀가분하다며 상담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포기에 가까운 수용이 장애부모에게 줄 수 있는 혜안의 최선일까? 상담자가 더 유능했다면 그를 일으키거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도울 수 있었을까? 무기력한 현실에 상담자는 진이 빠진다.
이 모든 일은 그나마 자격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기관의 규모가 담보되어야, 지역에 부모상담지원을 신청할 수 있을 만큼 정보가 충분한 부모가 있어야 가능하다. 예산을 받아두고도 신청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음 해에는 예산이 사라진다. 때로는 행정복지센터와 부모에게 이 낯선 서비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해주어야 하고 그 부모의 자녀는 다른 영역이 아니라 발달장애(지적, 자폐성장애)로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담자는 ‘과연 무슨 도움이 되긴 할까’하는 회의감과 피곤을 가득 담은 얼굴로 앞에 앉은 내담자를 드디어 만날 수 있다. 물론, 모든 국가서비스와 지자체서비스가 그러하듯 서류 작업과 점검 사항은 많고, 받을 수 있는 급여·비용은 적다. 자,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 무지막지하게 힘든 상담을 계속할 힘을 과연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 부모상담 지원 사업에서 상담자가 필수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 중 하나인 상담기록지의 틀. 보건복지부의 ‘2020년 발달장애인 지원 사업안내’ 캡처
필자 소개
|
출처: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5188&thread=03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