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오세훈 서울시장,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7월 1일부터 탈시설 제도 손질 나선 서울시
활동지원시간 삭감하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훼손
“탈시설 비용 많이 든다”면서 ‘탈시설 능력주의’ 선포
전장연, 30차 버스행동하며 오세훈 시장에게 서한 전달
서울시가 8월 셋째 주로 예정되어 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의 면담을 파기했다. 이에 대해 23일 오후 6시, 전장연은 혜화역 2번 출구 앞 도로 1차선을 점거하고 서울시의 면담 파기를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장연 활동가 100여 명은 결의대회 후, 탈시설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가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며 대학로를 행진했다. 이후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청으로 이동하면서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를 위한 시민 선전전을 이어 나갔다.
- 전장연-서울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지난 5월 12일, 김상한 서울시 전 복지정책실장과의 세 번째 실무협의에서 이들은 8월 셋째 주에 만나 ‘2024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8월 셋째 주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휴전’을 제안했던 서울시가 7월 1일부터 서울시에 사는 장애인들의 활동지원시간을 삭감하고 ‘서울시 중증장애인 맞춤형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무를 변경하는 등 본격적인 탈시설 제도 손질에 나섰기 때문이다. 상반기가 예고편이었다면 하반기부터 ‘본편’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시는 시로부터 활동지원시간을 추가로 받는 장애인 389명의 서비스 이용시간을 중단·삭감했다. 또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무에서 권익옹호 직무를 삭제하고, 최중증장애인은 참여하기 어려운 ‘서비스업 보조’를 대신 넣었다. 서비스업 보조에는 체육시설 보조, 병원·검진센터 보조, 도서관 사서 보조 등이 포함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대한 서울시의 직무 개편은 해당 사업의 근본적 의미를 훼손하고,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실제 수행하기에 어려운 직무라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노동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온 최중증장애인을 공공이 우선 채용하며 자본의 이익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범정책이었다.
올 초부터 예고된 탈시설 정책에 대한 칼질도 하반기에 본격 시작됐다. 서울시는 8월 중순부터 ‘자립실태 전수조사’라는 명목으로 탈시설장애인 700명을 대상으로 입·퇴소 과정의 적절성, 생활실태 및 건강 상태, 탈시설 만족도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제3차 서울시 탈시설화기본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번 전수조사의 목적은 7월 18일 서울시 보도자료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서울시는 “의사능력과 자립역량이 충분한 장애인은 탈시설할 수 있지만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전문적 돌봄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제한적인 탈시설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탈시설을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자립할 능력이 있는 장애인에게만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입장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중증발달장애인은 시설을 벗어날 수 없다. 탈시설을 보편적 권리로 본다면 모두가 탈시설해야 하기에 정책은 지속해서 부족분을 메우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립능력을 우선적으로 따진다면, 자립 여부에 대한 책임 소재를 자립지원 정책의 부족함이 아닌 개인에게 묻게 된다. 이는 결국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에 따라 판가름 날 수밖에 없으며 최종적으로 중증발달장애인은 ‘자립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 거주시설에 남겨진다.
서울시가 이러한 방향을 택한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7월 20일 발표한 서울시 보도자료에는 그 속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탈시설장애인에게 첫해에는 1인당 1억 4100만 원이 소요되는 반면, 시설 거주 장애인에겐 연 6100만 원이 쓰인다. 두 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탈시설한 장애인에게 훨씬 많은 예산이 투입되기에 탈시설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서 서울시는 “전장연의 이런 행태(버스행동, 지하철행동)는 자신들의 사업영역과 장애인계에서의 영향력 축소, 자신들이 주장하여 목적 지향적으로 무분별하게 추진하는 탈시설 사업의 부작용이 드러남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라면서 전장연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시설은 전장연의 주장이 아니다. 이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한국정부에 권고한 사안이다. 한국정부는 2008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 탈시설 권리는 협약 19조와 이를 해설한 일반논평 5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이에 덧붙여 2022년 9월에는 탈시설가이드라인이 발표되기도 했다. 탈시설가이드라인은 탈시설 목적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설수용 생존자에게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이에 따른 배·보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서울시 탄압에 ‘버스행동’으로 반격 나선 전장연
서울시 활동지원시간 중단과 삭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훼손, 탈시설 정책의 후퇴, 전장연에 대한 갈라치기 등이 이어지자 전장연은 7월 12일부터 버스타기 행동으로 반격에 나섰다.
7월 12일 종로구 종로1가 버스정류장 앞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전장연은 시내버스를 기습적으로 가로막는 첫 번째 버스행동을 진행했다. 다음날에는 오전 8시 혜화로타리(2차), 오전 9시 30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 버스정류장(3차)에서 출근길 버스행동을 이어 나갔다.
곧장 서울시의 응답이 왔다.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사무국장은 23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버스행동 사흘째인) 7월 14일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과장이 ‘버스타기를 계속하면 8월 면담은 어렵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전했다.
전장연은 8월 21일까지 29차례에 걸쳐 버스행동을 진행했다. 내년도 서울시 예산 수립 시기에 맞춰 예정된 8월 면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 30차 버스행동 진행 “우리가 조용히 하면 이 문제 해결되나?”
23일 결의대회에서 이형숙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시민들의 혐오와 욕설은 오히려 저희에게 투쟁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아무리 전장연을 향해 욕하셔도 우리는 존엄한 시민의 삶을 찾겠다”면서 “장애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며 혐오를 조장하는 서울시장은 필요 없다. 우리가 반드시 서울시를 바꾸자”고 외쳤다.
6시 45분, 전장연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3개 조로 나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이날 30차 버스행동이 이뤄졌다.
7시 30분, 창경궁·서울대학교병원 앞 정류장에서 서울시청으로 가는 160번 저상버스에 휠체어 이용자 3명을 포함한 전장연 활동가들, 경찰 10여 명이 탑승했다. 버스 안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의 이동할 자유에 대해 발언하자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중년 남성 시민이 “조용히 합시다”라고 소리쳤다. 그럼에도 박 대표가 발언을 이어가자 이 시민은 “조용히 하라니깐”하면서 거듭 소리쳤다.
박 대표는 “우리가 조용히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나. 장애인의 이동할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게 왜 잘못됐나. 시민들은 버스나 지하철 말고 국회나 청와대로 가라고 하는데 그곳에 안 가봤겠나. 22년 동안 싸우면서 안 해 본 거 없이 다 해봤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 대표의 발언은 하차할 때까지 20분간 이어졌다.
8시경, 서울시청 후문에서 전장연은 장애인복지정책과에 서한을 전달했다. 서한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해 서울시 장애인정책 실현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장연은 오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9월 4일까지 기다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