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가 풀린지 이틀 뒤인 7일, 김성민(가명, 37세) 씨가 침대 위에서 다음 주에 있을 업무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박승원
“하늘에서 갑자기 천정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어요. 자가격리하는 2주간 집에 꼼짝없이 갇혀 누워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확산지 대구에서 느닷없이 자가격리 된 한 중증장애인이 집에서 고립된 채 11일(2월 23~3월 5일)을 버텨야 했다. 뇌병변장애인 김성민 씨(가명, 38세)는 “감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활동지원 없이 혼자 갇혀 지낸 시간이었다”라고 말한다.
대구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에서 일하는 성민 씨는 평소 활동지원과 근로지원을 쓰며 일상을 보낸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는 활동지원사가, 센터에 출근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근로지원인이 그의 일상을 지원한다.
하지만 지난 2월 23일, 그가 활동하는 IL센터에서 한 활동지원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그를 포함한 직원 29명이 모두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감염 위험으로 활동지원과 근로지원이 끊긴 성민 씨는 아무런 생활지원 없이 집에 혼자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한쪽 팔로 버텨야 했다
성민 씨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약 2주의 격리기간이 어두운 터널에 갇힌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신체 중에서 오른손 하나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그에게 가장 먼저 닥친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격리되기 하루 전, 그러니까 토요일에 먹을 것을 사놨기에 망정이었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간편식으로 나온 된장찌개, 그리고 즉석밥이었다. 앉은 상태에서 눈높이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하나씩 데워먹으며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하지만 높은 싱크대, 완전히 뒤로 젖힐 수 없는 팔로 설거지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설거지와 쓰레기는 계속 쌓여만 갔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식품인 배추와 생쌀, 라면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조리할 수 없는 김성민 씨는 자가격리하는 동안 이 세 가지 식품을 하나도 먹을 수 없었다. 투명한 봉투 안에 담긴 배추가 썩어 문드러졌다. 사진 박승원
종종 치킨, 피자 등 배달음식도 시켜 먹었지만 지출이 부담됐다. 자가격리 상태로 배달원이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가면 기어서 가져와야 했다. 하지만 한쪽 팔과 엉덩이로 이동하는 성민 씨에게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평소 하루 두 끼 이상 챙겨 먹었던 그는 끼니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하루 한 끼로 연명했다. 그러던 중 자가격리 기간에 정부는 배추, 생쌀, 라면 등을 보내왔다.
“저 혼자서는 해먹을 수 없는 것들이에요. 라면은 끓이기도 힘들고. 뜨거운 냄비 들고 옮기다가 놓쳐서 화상이라도 입으면 저 도와줄 사람도 없잖아요. 더 기가 막힌 것은 배추인데, 지금 저보고 김장이라도 하라는 건가요?”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면서 생긴 고충도 있었다. 성민 씨는 “한 손으로는 씻는 것도 오래 걸리고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라면서 “오른손으로 세수와 머리만 감는 데 1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인 엉덩이에는 진물이나 살이 벗겨질 정도였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자가격리하는 사이 겪게 되는 고립에 대한 스트레스와 감염에 관한 두려움을 덜기 위한 심리상담 전화도 두 차례 왔었다. 그러나 성민 씨는 “통합심리지원단에서 5일 정도마다 한 번씩 연락이 왔었지만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라면서 “나를 정말 불안하게 하는 것은 보건소에 닿지 않는 전화였고,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코로나19 확진검사를 받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고립 7일째인 3월 1일까지도 보건소에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통화 중이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 대구시사회서비스원, 뒤늦게 대책 마련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구지역 장애인단체가 지속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대구시는 뒤늦게서야 지난 2일부터 대구시사회서비스원을 통해 긴급돌봄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성민 씨가 홀로 자가격리된 지 8일이 지난 후였다. 그는 결국 이용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IL센터에서 일하는 동료 이재훈 씨(가명, 지체장애인, 37세)도 성민 씨처럼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자가격리되었다. 그는 정부가 긴급돌봄체계를 더 일찍 마련했다 해도 선뜻 신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자가격리 대상자 가족 혹은 동거인을 위한 생활수칙으로 대상자와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불가피한 경우 마스크를 쓰고 서로 2m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재훈 씨는 좁은 원룸에서 살기에 애당초 활동지원사와 2m 떨어져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활동지원사가 집 내에 분리된 공간에 있다가 필요할 때만 지원하는 방식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는 “미처 확진검사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혹여라도 긴급 활동지원을 나선 사람에게 감염시키면 어떡하나 걱정됐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재훈 씨는 IL센터 활동가의 간헐적 지원으로 버텨나갈 수 있었다. 센터 상근자들은 방호복을 입고 5일에 한 번꼴로 그의 집을 찾아와 설거지, 빨래, 청소 지원 등을 했다. 씻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물음에 재훈 씨는 “씻고 싶었지만, 방호복을 입고 땀 흘리며 고생하는 동료에게 차마 씻는 것까지 부탁할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 정책국장은 “현재 정부는 활동지원 대책까지 민간에 떠맡기고 있다. 정부의 무책임한 대책으로 장애인은 재난 상황에서 더욱 고립된다”라면서 “활동지원사의 긴급지원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에 관한 안전대책과 평상시 근무 조건을 뛰어넘는 위험수당 등 제대로 된 대책을 갖춰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김성민 씨 화장실에 놓인 샤워 의자. 그 혼자서는 세수와 머리만 감는 데 1시간이 걸린다. 사진 박승원
- 자가격리는 끝났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일상
대구시의 경우, 자가격리기간 안에 음성판정을 받지 않으면 격리 기간이 연장된다. 자가격리 기간이 연장될 것 같은 불안에 두 사람은 전근배 대구장차연 정책국장의 도움으로 대구의료원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이들은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예정된 11일의 격리기간을 채운 후 지난 5일, 격리 해제됐다.
하지만 재훈 씨는 여전히 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기존에 호흡을 맞추던 활동지원사가 자가격리 중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대구시사회서비스원에서 하는 긴급지원 돌봄체계를 신청할 수 있지만 여전히 신청하지 않았다. 전문성이 떨어져 자신의 일상을 믿고 맡기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기존 활동지원사는 15개 장애유형에 관한 안전교육을 비롯해 총 40시간의 이론 교육과 10시간의 실습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반면, 현재 대구시사회서비스원에서 하는 긴급지원의 경우, 기존 활동지원 자격이 없더라도 단 두 시간의 이론교육만 수료하면 긴급돌봄이 필요한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그렇게 재훈 씨는 여전히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센터로 출근할 수 있게 되면서 먹는 문제는 그나마 괜찮아졌다. 점심은 센터에서, 저녁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 출근은 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활동지원사가 있을 때는 20분이면 충분했는데 현재는 두 시간이 걸린다. 특히 씻는 문제가 가장 힘들다. 재훈 씨는 “왼팔로 세수와 머리 감기만 겨우 할 뿐 샤워는 언감생심이다. 머리를 잘 못 감았는지 지금도 머리가 간질간질하다”라며 애써 웃었다.
며칠의 불편만 더 참으면 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번은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더욱 짧은 주기로 찾아올 재난 앞에서 중증장애인의 삶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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