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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다시 최옥란을 기억하며

 

고명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기재 : 2020.03.29

 

 

봄마다 장애인들은 ‘420공동투쟁단’이라는 걸 꾸린다. ‘장애인의날’인 4월20일에 맞춰 장애인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고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투쟁단은 매년 3월26일 출범해서 4월20일까지 활동한다. 올해도 3월26일, 지난주 목요일에 출범식을 가졌다. 코로나19 때문에 간격을 유지한 채 간소하게 진행되었지만 날짜가 바뀌지는 않았다.

 

[고병권의 묵묵]다시 최옥란을 기억하며

 

도대체 3월26일이 무슨 날이기에 그럴까. 이날은 장애해방열사 최옥란의 기일이다. 생전에 나는 그를 TV에서 보았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던 그가 12월의 칼바람을 맞으며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하는 사정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다.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 이것이 그가 내건 요구였다.

 

사정은 이랬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경제력이 없는 국민들에게 최저생계비가 지급되었다.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하던 최옥란도 28만원 남짓의 생계비를 받았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이 돈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했다. 임대주택 관리비와 공과금 16만원, 병원을 다닐 때 드는 교통비 12만원, 근육이완주사비의 월별 환산액수 13만원. 다른 비용은 고려할 것도 없었다. 서너 개의 지출 항목으로도 생계비가 넘었다. 노점을 해서 생활비에 보태고 싶었지만 일정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권을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의료비 혜택의 상실을 의미했다. 매주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명동성당 앞 농성에 나선 이유였다.

 

장애인 차별에 저항한 운동가
마지막에 택한 건 ‘한 줌의 약’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우리
열여덟 번째 봄, 그를 떠올린다

 

 

사실 당시 최옥란은 또 다른 싸움의 와중에 있었다. 그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어렵게 낳은 아이였다. 병원의 미흡한 대처로 최옥란의 장애는 이때 경증에서 중증으로 변했다. 이후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혼했고 남편과 아이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벌였다. 판결은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에게는 ‘돈 없는 중증장애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월 2회의 면접시간을 인정받은 게 전부였다. 생계가 불가능한 생계비처럼 면접시간도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방송 중 그는 무언가를 황급히 감추었다. 한 줌의 약이었다. “정말 힘들 때…”라며 그는 울먹였다. 노트에 적어둔 유서도 있었다. 그해 겨울의 싸움에 생명을 걸었다는 게 분명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방송에서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정부도, 사람들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침묵함으로써 우리는 마지막 싸움을 벌이는 사람에게 죽음 이외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사형선고문이 전달되었다. 아이와 살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입증할 통장 잔액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주변에 도움을 청해 얼마간의 돈을 넣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돈 때문에 수급권이 박탈되었다는 통지가 날아들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정해진 일이 정해진 대로 일어났다. 방송에서 말한 ‘정말 힘들 때’가 오고 만 것이다. 그는 약을 먹었다.

 

그는 참 가난했다. 미군기지촌에서 태어난 빈민이었고,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양육권을 빼앗긴 중증장애인 이혼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참 열심히 싸웠다. 일찍부터 직업재활원에 들어가 생계를 꾸렸고,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밟았으며, 1980년대 말부터 장애인 운동에 뛰어든 운동가였다. 그는 자신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했다.

 

3월26일, 나는 지금도 그날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모든 가난을 응집한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이 슬펐고, 다음에는 예고된 죽음을 그대로 지켜본 나 자신과 사회에 화가 났고, 그다음에는 운동가로서 그의 삶을 알고서 너무 부끄러웠다. 이듬해 나는 어느 신문에 고정 칼럼을 실을 기회를 얻었다. ‘최옥란을 기억하며’, 이것이 내 생애 첫 칼럼의 제목이다. 내가 생전의 그에게 준 것이라고는 부끄러운 침묵뿐이지만, 그래도 그는 18년 전 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생면부지의 장애인 운동가들을 만났을 때 느낀 까닭 모를 반가움이나 머뭇머뭇 걸어 들어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느낀 푸근함은 모두 내 안의 그가 느낀 감정이었을 것이다.

여느 학교들처럼 노들야학도 지금 휴교 상태다. 휴교 전 개학식 날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세상을 가장 많이 바꾼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차별과 배제, 억압, 가난을 누구보다 철저히 겪고 있기에 세상이 바뀌어야 할 이유를 그 어느 곳보다 많이 알고 있는 학교. 모두가 개학을 기다리는 오늘, 최옥란이 떠오른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92115015&code=990100#csidx514916911a5a7f89b3b4e293fe3c05e onebyone.gif?action_id=514916911a5a7f8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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