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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에서 장애인노동자는 왜 셈해지지 않나

[기획연재] 장애인, 노동을 묻다

고 김재순 산재 사건을 통해 본 장애인노동

 

 

등록일: 2020917

 

 

 

 

 
 
 

[편집자 주] 비장애인 중심의 생산성, 효율성을 강조하며 장애인에게 노동권을 박탈했던 기존의 노동담론을 넘어서고자 2019년에 ‘장애인 노동권 담론 모임’이 꾸려졌다. 세미나와 연구를 진행했던 내용 중 최근 장애인 노동권 관련 현안을 중심으로 연재를 이어감으로써 장애인 노동권 담론의 폭을 더 확장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4회에 걸쳐 △4차 산업혁명시대와 권리중심형 일자리 △고 김재순 사망사건을 통해 본 장애인노동 △장애인복지법 중심의 장애인 관련 법·제도가 놓친 ‘장애인 노동자’ △고 설요한의 죽음에서 드러난 공공일자리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을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지난 5월 22일 조선우드에서 일하다 사망한 지적장애인 고 김재순 씨의 산재사망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한 해 평균 산업재해(산재) 사망자가 2,400명인 대한민국에서 산재는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해결해야 할 인권의 의제다. 그러나 김재순 씨의 사건은 산재 문제에서 장애인 노동자의 존재가 사라져있음을, 노동자의 안전문제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 있음을 되묻게 했다. 장애인도 산재 피해를 당하고 있는 현실을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 보여준다. 장애인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공론화된 적이 없다.

 

1600322792_17061.jpg지난 5월 22일, 지적장애인 노동자 김재순 씨가 광주의 폐기물처리업체 조선우드에서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고 김재순 노동자의 영정사진. 사진 이가연

 

무엇이 그의 목숨을 앗아갔나

 

먼저 김재순 씨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실타래를 풀어가 보자. 전남 광주의 재활용업체 조선우드에서 일하던 그는 파쇄기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의 산재 사건에서 회사가 취하는 태도가 그렇듯이, 조선우드의 첫 반응은 고인이 잘못이라는 입장이었다.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낸 자기 과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로 드러난 사건의 실체는 다르다. 6월 4일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발표한 진상조사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산재사망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합성수지 파쇄기 작업은 고위험 작업임에도 1인이 작업한 것에 원인이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굴착기로 폐합성수지를 수지 파쇄기 등에 넣는 작업, 굴착기와 지게차, 화물자동차를 사용하는 하역 작업, 파쇄기 정비 작업 등은 2인 1조 작업을 해야 한다. 또한, 위험작업인 만큼 작업 전에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라 일을 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만약에 2인 1조였다면 그가 떨어지고 나서 바로 기계의 작동을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사고 현장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면, 김재순은 사망 전날과 전전날 네 차례나 혼자 작업했다. 한 차례 사수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으나 여러 번 고인은 혼자서 파쇄기 상부에 올라가 폐수지를 발로 정리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평소에도 위험작업을 혼자 한 것이다. 회사가 처음에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자기 과실”이란 말은 사실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안전하게 파쇄기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파쇄기 투입구에는 덮개도 없고 추락을 방지할 작업 발판도 없었다. 덮개가 열리면 즉시 전원이 차단되도록 하는 연동장치도 없었다. 노동자가 추락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던 것이다. 만약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 기계를 비상정지할 수 있는 (비상정지) 리모콘도 없었다.

 

셋째, 위험기계 작업에서 지켜져야 할 안전(보안)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험한 기계작동인 만큼 파쇄기의 제어판 문은 항상 잠겨있어야 하고 열쇠도 보안담당자가 따로 보관해야 하나 그러지 않았다. CCTV화면을 보면 열쇠는 항상 파쇄기에 꽂혀 있는 게 보인다. 아무나 파쇄기를 작동시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배치해야 할 기계 및 안전관리감독자도 없었다.

 

넷째, 회사는 고 김재순 씨에게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고 안전모나 안전화 같은 보호 장구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회사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고 안전 수칙이나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조선우드의 노동환경은 누구든 일하다 죽을 수 있는 상태였다.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가 법에 명시되어 있으나, 기계에 덮개와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 2인 1조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 확충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산재에서 그렇듯 안전을 위한 조치를 그저 ‘비용’으로만 여긴 것이다. 심지어 이 업체에선 2014년에도 컨베이어벨트 주변에서 일하던 60대 노동자가 사망한 적이 있었지만, 그 후에도 안전을 위한 노동환경 개선은 전혀 없었다. 고용노동부도 관리·감독은커녕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안전장치도 없이 홀로 위험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장애인노동자의 노동권 문제

 

그렇다면 이 산재사건에서 장애인노동자의 노동권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김재순 씨가 지적장애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궁 속을 빠져나오기 위한 실은 그가 조선우드에 재입사한 과정에서 보인다. 그는 기술계 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업 등에서 일용직을 하다가 조선우드에 처음 입사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약 14개월을 근무했다. 젊고 성실한 그에게는 많은 업무들이 주어졌고, 그는 회사생활을 힘들어하다 퇴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는 퇴사한 지 4개월 만에 조선우드로 재입사한다. 수사가 이루어진 부분은 아니라 구체적인 재입사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추정할 수는 있다. 지적장애인인 그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주로 일용직 등의 단기 일자리에서 일한 직업 이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었음에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스물다섯인 그가 정규직으로 안정적으로 일한 곳은 조선우드가 처음이었다. 회사 측에서도 성실하고 자사에서 일한 경력도 있는 그의 재입사는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재입사는 장애인에 대한 고용차별, 높은 일자리장벽, 안전하지 않은 일자리와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장애인차별과 장애인안전의 문제는 맞물려 있다. 장애인차별적인 고용구조, 장애인 일자리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1600322890_47222.jpg지난 6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고 김재순 장애인노동자의 죽음을 알리며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셈해지지 않는’ 장애인노동자
 
한 해 장애인노동자의 산재율은 얼마나 되는가. 주로 어떤 사업장의 장애인들이 많이 피해를 입는가? 장애유형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김재순 씨의 산재 사건 이후 장애인노동자 산재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조선우드 한 사업장의 문제에만 시선을 고정해서는 장애인노동자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해 답하며 해결의 단초를 찾으려고 해도 기본적인 사실자료조차 없다. 아니 장애인노동자 산재 자료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일하다 다치고 죽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단초다. 정부도 산업재해 통계를 내는 의미를 ‘사업의 종류, 규모 및 유형별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파악하여 정부정책의 실효성 여부를 검증하고 향후 효과적인 산업 재해 예방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에서 분기별이나 연도별로 발표하는 산업재해 발생현황에는 장애인노동자가 입은 산재 통계는 보이지 않는다. 전체 산재통계에서 장애인노동자의 산재를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셈해지지 않는 것이다. 이 현황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아래 장애인공단)의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서 따로 발표한다.

 

그동안 장애인 산재사건은 실태 파악도 되지 않다가 그나마 2007년도에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아래 장애인고용촉진법)이 개정되어 2008년부터 장애인노동자의 산재 실태가 조사되고 집계되기 시작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26조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은 장애인의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을 위하여 2년마다 장애인의 취업직종·근로형태·근속기간·임금수준 등 고용현황 및 장애인근로자의 산업재해 현황에 대하여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격년이 아니라 매년 조사하고 발표한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실태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구를 (노동시장, 보호해야 할 노동자) 성원으로 보고 셈하는가는 누구에게 ‘노동자의 자격’, ‘노동자라는 성원권을 부여하는가’라는 점과 연관되기에 근본적으로 장애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여기선 장애인노동자의 자격, 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시각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사실 고용노동부가 파악조차 하지 않는 이주노동자의 산재와 달리 장애인노동자의 산재 현황은 조사된 만큼 연간 산재통계에 넣어 발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를 단지 정부기관의 ‘칸막이식 관료행정(기관 간 협력 부족)’으로만 취급해서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노동담론을 파악하기 어렵다. 장애인산재를 분리해서 따로 관리하는 것에서 국가가 무엇을 ‘노동’으로 여기고 무엇을 ‘산재’로 여기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장애인과 노동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장애인노동정책이 있다.   

 

고용노동부가 연간 산재통계 발표에서 장애인노동자를 셈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은 장애인노동자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포착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특정인(비장애인)의 노동만을 ‘자연스럽게’ 노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소리는 단지 말이 아니라 웅얼거림으로 인식되는 감각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산재를 구획된 자리에만 배치함으로써 장애인의 노동과 산재를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산재통계 발표방식은 우리의 노동에 대한 지각양식과 감각질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노동을 ‘생산성’, ‘비장애인이 수행하는 행위’로만 정의하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고 사유되지 않는 장애인의 노동을, 모두가 감각할 수 있게 조치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노동자의 산재를 모든 사람이 감지할 수 있게, 성별통계처럼 장애유무별 통계를 발표하라는  요구는 일종의 장애인노동자를 가시화하는 전략이다.

 

생색내기용 형식적인 실태 파악


그러나 단지 장애인노동자를 가시화하는 전략은 ‘통합발표’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현재 이뤄지는 장애인노동자 실태조사는 생색내기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고용노동부와 장애인공단이 수행하는 장애인노동자의 산재 실태는 총 산재 사건 수와 산재 인정 수만 파악하고 있다. 지역별, 업종별, 연령별, 장애정도별, 장애유형별 산재 현황은 파악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노동자가 왜 어디서 주로 다치는지 파악하지 않는다.

 

장애인공단이 발표한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기업체의 연간 사고발생률은 0.8%로 전체 근로자의 사고발생 비율(0.5%)보다 높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일하다 사고나 질병 발생 장애인노동자는 1,426명이다(산재인정자는 471명). 2015년, 2017년 조사 때에도 장애인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전체노동자 산재 발생률에 비해 높았음에도 그 원인이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장애인노동자 산재사망 건수도 정보공개 요청을 해야 알 수 있다.

 

1600322314_82853.jpg장애인 고용기업체의 근로자의 업무 관련 사고 및 질병 발생 현황.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 캡처

 

이뿐만이 아니다. 실태조사 설문문항 중 산재예방 문항도 매우 형식적이다. 산업재해 예방 활동의 구체적 내용과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있지 않다. 산재 예방활동을 위한 안전보건활동이 무엇인지 예시조차 없이 뭉뚱그린 설문으로 예방활동을 하고 있는지 묻는데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 가능하겠는가. 예를 들어 산재 예방을 위한 안내문(‘안전에 유의합시다’ 등의 현수막)을 한번 사내에 게시한 것이 안전보건활동의 전부여도 회사는 안전보건활동을 한 셈이 된다. 오히려 이런 식의 질문은 기업체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2019년 실태조사결과에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활동’ 비율이 46.6%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런 식의 설문문항으로 나온 응답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심지어 설문문항에는 안전교육을 얼마나(빈도) 어떻게(교육방식) 누구에게(대상) 진행하고 있는지도 묻고 있지 않다.

 

1600322335_31233.jpg근로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체의 활동 및 지원에 관한 설문 문항.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 캡처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장애인

 

2019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상시근로자 수는 20만 5039명으로 전체 상시근로자의 1.42%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조차도 추정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산재사건은 비정규직 영세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한다. 비정규직은 더 힘든 업무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고 위험해도 고용불안 때문에 위험작업을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위험을 가중시킨다. 장애인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환경을 바꾸는 일이 병행되지 않으면 장애인노동자의 산재를 막기는 어렵다.

 

실제 작년 한국도로공사의 대규모 해고에 저항했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의 사례에서도 이는 알 수 있다. 톨게이트에 근무하는 수납노동자들 중에는 장애인들이 많았다. 공공기관이기도 하지만 외주화된 영업소(용역업체)가 장애인고용장려금제도로 수입을 늘리려고 장애인을 많이 고용했기 때문이다. 장애인고용장려금제도란 장애인의 고용촉진을 유도하고자 의무고용률(민간 3.1%, 공공 3.4%)을 초과하여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정책으로 모두 비정규직이 되었다. 2년마다 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야 했으나 도로공사의 지시를 받는 불법파견이었다. 이에 대한 소송에서 이겨서 도로공사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했다. 

 

그런데 도로공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하겠다고 발표하자 다수의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도로공사는 거부한 수납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대법원 승소에 따라 7개월이라는 긴 싸움 끝에 현장에 정규직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원직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작업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거나 수납업무가 아닌 풀 뽑기 등으로 직무를 배치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노동자들에게 풀 뽑기를 맡기는 것은 엄연한 장애인차별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동현장에는 이렇게 동정과 시혜가 아니라 노골적인 괴롭힘이 자리한다.

 

1600322379_90724.jpg장애인 고용현황 총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 캡처
 

그 외에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장애인노동자의 산재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작업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거나 작업장 내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괴롭힘을 피하려고 재택근무를 하는 장애인노동자도 많다. 전화상담서비스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시간제이거나 특수고용형태가 많다. 그러다보니 산재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이렇듯 장애인노동자의 산재를 막으려면, 장애인노동자의 고용환경 개선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1600322937_79902.jpg김재순이 일하다 목숨을 잃은 조선우드 공장. 사진 이가연

 

아쉬운 김예지 개정안

 

김예지 미래통합당 의원은 장애인노동자의 산재를 막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며 장애인고용촉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26조에 “고용노동부 장관은 실태조사 결과, 장애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예방과 안정적 근무여건 조성을 위하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대책을 수립·시행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법안이다. 이 개정안에서 명시한 대책 수립 및 시행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전제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 없이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현재의 조사는 겉핥기식이다. 이를 그대로 둔 개정안으로는 장애인노동자의 산재사망을 막기 어렵다.

 

김예지의원 안이 아쉬운 것은 실태조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빠져서만이 아니다. 회사와 정부의 의무를 강제하는 내용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용노동부는 2014년 산재 사망이 발생했는데도 조선우드에 대해 어떠한 관리·감독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등을 해야 마땅했다. 또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사업주 처벌에 관한 사항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담길 것이므로 차치하더라도,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장애인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이나 ‘특별조사’로 산재사건 발생의 원인 등의 실태, 장애인노동자에 대한 안전 조치 여부 등의 조사를 의무조항으로 넣는다면 좋았을 것이다. 혹자는 산업안전보건법조차 산재사망 사건이 발생해도 특별근로감독을 의무조항으로 하고 있지 않은데,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담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노동자의 고용 촉진을 목적으로 만든 법이므로 장애인 권리보장과 연관된 사항을 담는 것이 문제될 일은 아니다. 물론 이는 김예지 의원안이 아니더라도 정부나 다른 의원들이 발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개정안은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자보다는 기업주의 부담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일까. 여전히 노동부는 산재사망사고를 줄일 의지가 없는 것일까. 김재순 산재사건 이후에도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장애인노동자의 존재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알맹이가 빠진 법안을 보고 있노라니 씁쓸하다. 

 

필자 소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여성, 비정규직, 장애인, 성소수자 등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려 한다.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외침과 침묵을 들으려 애쓰고 있으며 그를 위한 공부와 기록 작업을 즐겨한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비정규직 이제그만!1100만 공동투쟁’,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쓴 인권선언」, 「돌봄노동자권리선언」의 초안을 잡는 등 페미니즘과 반자본주의를 기치로 한 인권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출처: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5094&thread=04r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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