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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평등한 세상’ 꿈꾼 43명의 장애해방열사 기리다

 

 

2020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문화제 ‘기억하라, 투쟁으로!’ 열려
부양의무자 기준, 장애인탈시설, 장애인노동권 다뤄

 

          

                                                                                                                 등록일:2020년04월21일

 
 

1587452586_49999.jpg 박경석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회장이 43명의 장애해방열사 이름을 부른 뒤 주먹을 쥐어 올리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이현준, 박기연, 정정수, 이인석, 박일수 우동민, 김공대, 이영주, 김주영, 장성아, 지영, 설안순, 이광동, 장성희, 박진영, 조성배, 김준혁, 송국현, 박홍구, 이재진, 박문희, 곽정숙, 김종희, 김호식, 박지우, 박지훈, 박현, 정성진, 정현성, 최종훈, 권오진, 이창선, 박정혁, 황정용, 설요한, 한민희, 박종필.

 

43명의 열사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왔던 투쟁의 길을 걸었던 분들이다. 이들은 가난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한 세상 인간답게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고 싶어 했던 분들이다. 이분들처럼 대한민국에 우리의 권리를 투쟁으로 알렸으면 좋겠다.” (박경석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회장)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20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2020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문화제 ‘기억하라, 투쟁으로!’를 열었다. 이들은 어느덧 43명으로 늘어난 열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장애해방열사들이 꿈꿨던 평등한 세상은 여전히 요원하다. 420공투단은 열사들의 뜻을 이어 투쟁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그 꿈을 이루겠다고 결의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노래로물들다, 박준, 어깨꿈밴드, 김종환, 어쿠스틱 밴드 작은 나무가 문화공연으로 추모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1587452605_47626.jpg 김종환 문화노동자가 장애해방열사의 영정을 마주한 채로 추모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낮은 최저생계비, 부양의무자 기준 여전히 그대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듬해인 2001년 최옥란 열사는 명동성당 앞에 섰다. 기초생활수급비가 가구별로 책정되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턱없이 적은 최저생계비 26만 원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옥란 열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개정을 주장하며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했다. 그 후 18년이 흘렀지만, 최옥란 열사가 지적했던 부양의무자 기준과 낮은 최저생계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1587452624_89273.jpg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최옥란 열사는 여성이었고, 장애인이었고, 노점상을 하는 빈민이었기에 기초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과 최저생계비 문제를 금방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최저생계비는 연 2%의 인상률에 불과한데, 세상은 관심이 없다가 코로나19로 재난 상황에 처한 지금에서야 최저생계비와 기준중위소득이 사람들 입에 오른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일로 닥치니 관심을 가졌고,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낮은 기준선에 놀랐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3%에 해당하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처한 상황이다. 코로나19에서 이들은 더 큰 어려움에 빠졌다. 부스러기 복지제도로는 이들의 삶은 나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의장은 “정부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됐다고 하지만 장애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다. 열사들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죽음을 선택하면서 그토록 바랐던 평등한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열사들의 뜻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외쳤다.

 

- 인권재난, 시설에 평생 갇힌 장애인들

 

지난 2009년 6월 4일, 마로니에 공원 구석에 세간을 모아놓고 노숙농성을 펼쳤던 8명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우리가 탈시설을 했으니 살 곳을 마련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고 농성 62일 만에 성과를 거뒀다.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렸던 이들 투쟁은 장애인 주거권을 쟁취한 중요한 사건이자, 탈시설 운동의 시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마로니에 8인 중 황정용 열사는 지난 2019년 7월 13일 사망했다. 그가 시설에서 나온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그러나 여전히 시설은 그대로고 대다수 장애인들이 평생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는 “43명의 열사 중에는 나와 같은 시설(꽃동네)에 있었던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나는 그 시설에서 15년 동안 갇혀 살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과연 행복했던 적이 있나. 크게 웃은 적이 있나’를 생각해봤지만, 없었다. 시설에서는 1년에 겨우 한 번 외출이 가능했다. 요즘 코로나19로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집에 갇혀 있다. 평생을 그렇게 갇혀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많다. 시간을 제한하고 자유가 없는 시설은 그 자체가 재난이다. 요즘 시설은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최근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집에서 인권침해 사실이 알려졌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모든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올 수 있도록 시설폐쇄법을 제정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1587452645_85719.jpg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실적 중심 노동시장, 장애인 죽음으로 내몰아
 
설요한 열사는 지난 2019년 4월부터 시작한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로 활동했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을 한 달에 4명씩 5회, 1년에 48명의 취업을 지원해야 했다. 그러나 좀처럼 실적을 채울 수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다 12월 10일에 예정되었던 사업 점검을 앞두고 과도한 업무와 실적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12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설요한 열사의 죽음은 실적중심으로 짜인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가리키고 있다. 또 다른 설요한이 나오기 전에 노동시장이 장애인의 권리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1587452663_24743.jpg 이창준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중증장애인 권리 중심의 일자리 보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뒤로 설요한 열사의 영정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이창준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장애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활동지원제도, 지역사회에서의 삶, 그리고 노동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우리 장애인을 실적의 압박으로 밀어 넣었고, 설요한 동지가 죽자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뒤늦게 사과하고 일자리 기준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지도록,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가 마련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활동가는 “헌법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비정규직도 그렇지만, 장애인의 노동권은 너무나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장애인을 최저임금 적용제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말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43명의 장애해방열사들의 넋을 기리는 국화꽃 한 송이를 놓으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1587452677_50155.jpg 헌화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출처: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589&thread=04r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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