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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시청각장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조원석 ‘손잡다’ 대표(왼쪽)와 박관찬 <함께걸음> 기자(오른쪽)는 시청각장애이면서도 각각 대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각각 진행했다. 소통방식은 달라도 이들의 목표는 같다. 시청각장애가 하나의 단일한 장애로 인정받아 이들에게 적절한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철훈 선임기자

조원석 ‘손잡다’ 대표(왼쪽)와 박관찬 <함께걸음> 기자(오른쪽)는 시청각장애이면서도 각각 대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각각 진행했다. 소통방식은 달라도 이들의 목표는 같다. 시청각장애가 하나의 단일한 장애로 인정받아 이들에게 적절한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철훈 선임기자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이 보호하고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장애유형은 15가지가 전부다.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안면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장애다. 정부정책이나 예산은 이 유형 안에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 말은 15가지 장애유형 밖에 있는 장애인, 더 많은 장애를 가진 장애인만을 위한 지원은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장애인복지법에 장애가 있다는 말이다. 
 

 

장애 하나만 적용한 지원밖에 못 받아 

 

질문을 던져보자. 아주 가까이에서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면 약간 들리는데, 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시각장애인일까.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는데 눈앞에 아주 큰 글자를 갖다 댔을 때 읽을 수 있다면 청각장애인일까. 만약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면 어느 장애유형으로 분류해야 할까. 법은 여러 장애를 중복으로 갖고 있어도 두드러진 하나의 유형에 장애인을 욱여넣는다. 그리고 그 장애유형에 해당하는 지원만 받을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장애인은 그래서 15개 유형 밖의 장애인이다. 약간 보이고, 약간 들리는 것은 더 큰 장애 앞에 무시된다.

 

조원석 ‘손잡다’ 대표(28)와 박관찬 <함께걸음> 기자(33)는 시청각장애인이다. 시청각장애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에겐 낯설다. 시청각장애라는 단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3년 전인 2017년 10월 한국장애인개발원 서해정 박사가 발표한 <시청각중복장애인(Deaf-Blind)의 욕구 및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가 처음이다. 보건복지부는 대한민국에 몇 명의 시청각장애인이 거주하는지조차 모른다. 시청각장애라는 단어가 처음 법정용어로 등장한 것은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2018년 4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것이 최초다. 

 

조원석 대표는 윤소하 의원실에서 작성한 개정법률안 초안의 ‘시청각중복장애인’이라는 단어에서 ‘중복’을 빼는 작업을 했다. 

 

“윤소하 의원실에서 법정단체도 아닌 저희를 찾아 ‘어떻게 법안을 만들면 좋겠냐’며 초안을 보여줬습니다. SNS를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눴습니다. 초안에는 ‘시청각중복장애’로 적혀 있었는데 제가 ‘중복’을 빼자고 했습니다. 시청각장애는 시각과 청각, 각각 별개의 장애가 중복해서 존재하는 장애가 아닌 단일한 하나의 장애이기 때문입니다. ‘시각장애+청각장애’로 보면 시청각장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원실에서는 저희의 의견을 반영해줬습니다.” 

 

그리고 2019년 10월 31일 시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담긴 장애인복지법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청각장애인을 지원하도록 한 이 법은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보건복지부도 이제야 시청각장애인 실태 파악 작업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조원석 대표와 박관찬 기자는 세상에 시청각장애인을 알리겠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 때문에 언어조차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시청각장애인과 달리 그들은 글을 쓰고, 이해하고, 논리정연한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언젠가 청각마저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저와 같은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들더라도 계속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조원석 대표가 말했다. 
 

 

#조원석 ‘손잡다’ 대표 

 

조원석 대표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평등’이를 쓰다듬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조원석 대표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평등’이를 쓰다듬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조 대표는 7살 무렵 고열을 동반한 감기를 앓고 뇌수막염이 생겼다. 그때 시신경이 ‘타면서’ 실명했다. 점차 청각도 잃기 시작했다. 지금은 20㎝ 거리 안에서 큰소리로 하는 말을 조금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청력을 유지하고 있다. 의료진은 그의 장애를 ‘원인불명’으로 진단했다. 종로의 맹학교를 다니며 맹기반 시청각장애인(시각장애를 중심으로 한 시청각장애)으로 살아오던 그가 본격적으로 ‘손잡다’라는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을 만든 것은 2017년 무렵부터였다. 그를 포함한 3명의 시청각장애인을 만났다. 각각 장애의 정도가 달랐다. 조 대표는 맹기반 시청각장애인이었고, 다른 사람은 농기반 시청각장애인(청각장애를 중심으로 한 시청각장애)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중도시청각장애인으로 농학교 교사였다. 서로 수어와 점자를 알려주며 모임확대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2017년 2월, 3명에서 시작된 모임은 해를 거듭하며 회원을 늘려갔다. 매주 금요일마다 모였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공부하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매주 참석하는 인원은 적게는 7~8명, 많게는 11~12명까지 늘었다. 1년에 45회가량 만난다. 

 

‘손잡다’의 목표는 명료하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 안에만 갇혀 살아가는 시청각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자는 게 단체의 목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나오지 않아 보이지 않고, 보려 하지 않아 보이지 않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 여기 있다. 나 여기서 살고 있고, 나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외치려 모인 것입니다.” 

 

이들은 일종의 ‘구조활동’도 한다. “모임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아는 누구도 시청각장애인 것 같은데 집 안에만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사람을 알 만한 사람이 있을까 수소문한 뒤 예고 없이 그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려 ‘함께 어울리자’고 권유하기도 합니다. 대화방식은 각자 달라도 대화도 한번 해보자, 사람 냄새 한번 맡아보자…. 앞으로는 조합활동도 해보고, 예술활동도 해보고, 여름에는 팥빙수 한번 만들어 먹고, 샌드위치 한번 만들어 먹어보자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우리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우리도 시각·청각장애인들처럼 세상에 목소리를 내보자는 겁니다.” 손잡다는 순수 민간단체다. 그는 이제 법인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만을 위한 단체가 없으니 보건복지부가 우리의 문제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나 한국농아인협회와 논의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보건복지부 주무관에게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농인·맹인과 무관한 별개의 장애다. 시청각장애인 관련 정책을 만들려면 시청각장애인과 소통해달라’라고요.” 
 

 

#박관찬 <함께걸음> 기자 

 

첼로 연주를 하고 있는 박관찬 기자.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그는 첼로를 연주하고, 마음으로 듣는다. 페이스북 갈무리

첼로 연주를 하고 있는 박관찬 기자.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그는 첼로를 연주하고, 마음으로 듣는다. 페이스북 갈무리

 

박관찬 기자는 비장애인과 함께 일반 초·중·고교를 진학한 시청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느꼈다. “3학년 때 선거에 나가 반장이 됐습니다. 기쁜 마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어머니가 하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20대가 돼서야 병명을 알았다. 시신경위축증이었다. 청각은 시각보다 빨리 상실했다.

 

2019년 3월부터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담는 월간지 <함께걸음>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1년간 객원기자로 일하면서 시청각장애인·소수장애인 인권에 대한 글을 써오다 지난해부터 전업기자가 됐다. 그 전에는 장애인 인식 교육 강사로 활동했다. 원래 갖고 싶었던 직업은 법원직 공무원이었지만 그 꿈은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대구대 법학 학사·석사과정을 마쳤다. 또 대학 고시지원반 법무사반에 수석으로 들어갔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시험 현장은 그를 배려하지 않았다. “지금은 장애인이 공무원시험을 칠 때 각종 시험 지원을 해줍니다. 그런데 제가 시험을 칠 당시만 해도 행정직은 장애인 지원이 있어도 법원직 공무원시험은 비장애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게 했습니다. 하루 3~4시간을 자며 공부를 했어도 시험시간 부족으로 시험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지의 깨알 같은 글씨를 그는 볼 수 없었다. 

 

이후 장애인고용공단에 올라온 각종 구인정보 서류전형에 넣었다.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지원했지만 서류합격조차 할 수 없었다. 장애인 고용을 지원하는 공단이라 해도 시각·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그는 고용 가능한 인력으로 보지 않았다. 교육과 취업을 이어주는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을 통해 컴퓨터 실습, 제과·제빵, 미화직 등 교육 등에 대한 취업훈련을 받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시각장애인반이나 청각장애인반 어디에도 그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반은 말로 교육을 하는데 저는 들을 수가 없고, 청각장애인반은 수어통역사가 교단 앞에서 수어로 통역을 해주는데 저는 수어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담당자에게 “활동지원가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은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교육하고 채용을 돕는 곳인데 독자적으로 수업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교육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비장애 친구들과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좌절한 적은 없었는데, 그때 처음 좌절이라는 단어가 와 닿았습니다.” 그의 좌절은 시청각장애인을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과는 별개의 독립된 하나의 장애로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는 그는 ‘촉수어’를 사용한다. 촉수어란 서로가 손을 맞잡고 하는 수어를 말한다. 손바닥에 글씨를 적어 소통하는 손바닥 필담도 가능하다.

 

그는 좌절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시청각장애인이 왜 시각·청각 장애인과 다른지 장애인들에게도 알리고, 비장애인들에게도 알리기로 했다. 그는 장애인 인식교육 강연을 하고, 글을 써서 시청각장애인·소수장애인의 삶과 어려움을 알린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 시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의 현실적 문제를 다룬 ‘권리도 돈을 내야 하는가’(<함께걸음> 2020년 2월 제372호)도 장애인이자 기자라는 정체성으로 만들어낸 기사다. 비장애인들이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장애인 정책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어려움을 기사를 통해 알리는 것 역시 그가 하는 일이다.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시청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조원석 대표와 박관찬 기자는 “목표를 향해 느리지만 조금씩 걸어가겠다”고 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어마저 잃고 스스로 갇힌 삶을 살아가는 시청각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더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 그들이 먼저 세상 앞에 선 이유이기도 하다.

 

 

출처: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6083000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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