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재순 장애인, 청년, 노동자 사회적 타살 규탄 기자회견 “30년 장애인일자리정책 사망선고”
2020년 6월 8일(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서울 고용노동청으로 우리는 모였습니다.
고인은 지난 2020년 5월 22일(금) 07:45경 조선우드 공장에 출근하여 굴착기를 사용하여 파쇄작업장 정리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이어 수지 파쇄기 시험가동 및 점검을 실시하던 중 09:45경 폐기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져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다발성 분쇄손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고인이 했던 파쇄기 정리작업은 적어도 2인 1조로 진행되어야하는 고위험 노동이지만, 그는 단독으로 진행하였으며,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당시 사업장은 적합한 관리나 협업 인력 배치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상조사단은 “사고 당시 고인과 짝을 이룬 사람이 있었다면 고인이 수지 파쇄기로 떨어진 직후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 해당 파쇄기에는 안전조치 사항인 수지 파쇄기 투입구 덮개와 추락방지를 위한 작업발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기계 가동을 중지시키는 비상정지 리모컨 및 작업지휘자도 없었다.
고인은 일하는 동안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을 만큼 성실했지만, 고된 업무로 인해 중간에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고인은 이 회사에서 2018년 2월 9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약 14개월간 근무하다가 일이 힘들어 그만뒀다. 그러나 중증 지적장애인인 고인은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19년 8월에 회사에 재입사한 뒤 사망 직전까지 10개월간 또다시 위험한 파쇄기 앞에서 일해야만 했다.
김 씨의 죽음 후, 사업주는 고인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기계를 돌리다가 사고를 냈다며 회사 과실을 회피하는 발언을 유족에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사 결과, 사업주의 주장과는 다르게 고인은 평상시대로 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단은 “위험성이 큰 수지 파쇄기 사전가동 및 점검작업을 지적장애인 고인 혼자서 수행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거나 지시한 것”이라며 고위험 작업에 지적장애인을 단독으로 작업시켰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비마이너, 김재순 장애인·청년·노동자의 죽음… 장애계 “사회적 타살”기사요약)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성주 회장 투쟁발언 입니다.
2인1조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고 김재순님이 작업하던 환경은 안전관리가 너무나도 허술했습니다.
어떠한 노동이라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 우리가 함께 쟁취했으면 좋겠습니다.
광주에서도 동지들 믿고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고김재순 장애인노동자 아버님 발언입니다.
산업현장의 모든노동자의 안전은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현장의 구호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21대 국회에서는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안전한 산업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입법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저 역시 2002년도에 산재로 장애인이 되었고 이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어려웠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전태일재단 박계현 사무총장의 연대발언 입니다.
장애인동지들을 마주치는 것은 늘 거리입니다.
어떤 사안들은 정부와 합의를 하기도하고 환호를 지르기도 하지만 장애인동지들의 사안이 거리가 아닌 곳에서 외침이 있는것은 거의 본적이 없는 것 닽아 발언하러 오는 길에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 전태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장애인 노동권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대하길 바라며 전태일재단도 더 낮은 곳에의 연대를 약속하며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박경석 이사장의 닫는발언입니다.
고 김재순 동지의 아버님이 광주시민사회대책위에서 준비한 문건을 전달해주셨습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게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언론에도 뿌리고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줘도 좋다고 하십니다.
이 보고서에는 그가 왜 죽어야했는지 하나하나 적혀있습니다.
2019년 8월에 조선우드에 재입사한 고 김재순 동지는 10개월여 일을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예전에도 일하다가 힘들어서 그만두었다가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등록” 되어있는 그느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선우드는 그가 장애인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장에서 그가 받았을 차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을 만들어졌지만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시장 내에 들어 간 장애인들은 자신이 장애가 있음조차도 감춰야만 했습니다.
제대로된 장애인의 고용
산업현장에서 제대로된 안전
무엇하나 제대로 지켜지는게 없습니다.
왜 시장 내에서 장애인이 노동해야하는지 그것이 권리인지 몰랐는데 투쟁하면서 알게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고 김재순 동지의 죽음에 함께 싸우려 하고 있습니까?
누구도 배제되지않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버” 우리가 싸워서 만듭시다.
분쇄기가 파쇄기가 우리의 생명을 노리지 못하게 우리가 투쟁하면 좋겠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권리로
중증장애인의 특성에 맞추어진 맞춤형 일자리를 위해 함께 투쟁합시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김진석, 이효진, 임현경 활동가가 참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