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이 편하다고? 장애학생 배제돼도 속수무책인 대학
개선되지 않는 온라인 장애학생 편의지원, 2학기 때도 여전히…
힘없는 장애학생지원센터, 대학과 정부는 수수방관만
등록일: 2020년 9월 24일
코로나19 장기화로 올해 상당수의 대학이 2학기 수업도 전면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1학기 때 온라인 수업에서 발생한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학기에도 온라인 수업이 이뤄지니, 장애학생들은 또다시 같은 어려움을 겪어내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문제를 발 벗고 해결해 줄 학내 담당 부서도 없다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2학년인 정승원 씨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총학생회 장애인권위원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줌(ZOOM)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한글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화면낭독프로그램 ‘센스리더’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센스리더가 줌에 접근할 수 있는 기능이 한정적이다 보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한정적이다. 자신이 단축키를 제대로 눌렀는지 알고자 센스리더를 통해 확인하려고 해도 확인이 어려울 만큼 줌과 센스리더는 잘 호환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 씨는 줌을 통한 영상수업에서 몇 개의 단축키를 외워서 음소거를 하거나 화면 공유를 껐다 켜는 정도만 할 수 있다.
온라인 줌 회의를 하는 모습. 사진 언스플래시
수업에서 교수는 줌에 있는 화면 공유 기능을 통해 학생들과 자료를 공유한다. 특히 온라인 수업에서는 PPT를 화면공유를 통해 큼지막하게 띄울 수 있다. 교수는 “이거는”이라고 말하며 마우스로 PPT에 있는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러나 정 씨는 “이거”라는 지시대명사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화면 속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채팅방에 누군가 메시지를 올린다면 그 메시지를 바로 센스리더가 읽어내어서, 두 목소리는 포개서 들렸다.
우여곡절 끝에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최대한 줌으로 하는 실시간 수업을 피해서 수강 신청을 했다. 전공이 사회학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실시간 수업을 하는 과목이 많지 않았다. 정 씨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학기에는 다행히 줌을 활용한 수업들이 많지 않다. 줌보다는 녹화 수업이 편해서 주로 녹화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학생회 회의를 줌으로 해서 줌 활용을 아예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러한 장애학생들의 어려움을 교육부도 알고 있고, 학교도 알고 있다. 지난 7월 3일에는 교육부 학생지원국과 대학민주화를 위한 대학생연석회의(아래 연석회의), 중앙대 장애인권위원회 등이 면담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공유했다. 정 씨도 그날 간담회에 참석했다. 정 씨는 그날의 회의를 복기하며 말했다.
“음성프로그램 만드는 회사가 따로 있어요. 그 회사랑 줌이랑 연결해서 음성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당시 이야기했는데 현재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어요. 체감하기도 어렵고,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도 없어요. 간담회 이후에 교육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뿌렸다는 것만 알아요.”
청각장애인 혹은 수화언어(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도 온라인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음성언어에 대한 자막 지원이나 수어통역이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다니는 중앙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각장애학생들이 다니고 있지만 학교는 이들을 위한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다. 정 씨는 “1학기 때 자막 지원을 요구했고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이를 하려고 했으나, 학내 다른 부서에서 협력해주지 않았다. 학교 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하니 그제야 자막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클래스에서 시험 볼 경우, 장애학생은 시험 시간 연장이 필요하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명시된 정당한 편의제공이다. 그러나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된 현재, 이러한 요구는 잘 수용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는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가 문제해결의 주체로 지속해서 요청하고 요구해야만 한다. 학내에 장애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30조에 근거해 설치된 학내 기구나, 대부분 1~2년짜리 비정규직이고 교내에서 ‘한직 취급’을 받아서 아무 힘이 없다는 게 보편적인 목소리다. 정 씨 또한 “장애학생지원센터 문제가 제일 크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 씨는 “학교에서 장애학생 자체를 많이 안 뽑기에 이런 문제가 비가시화되고 몇몇이 겪는 소수의 문제로 취급된다. 소수일수록 고립되고 고립될수록 문제로 꺼내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학민주화를 위한 대학생연석회의, 학내 장애인권위원회는 24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각 대학에 교육 공공성의 관점에서 배리어프리 환경 구축을 요구했다. 사진 강혜민
- 특수교육법 개정으로 장애학생 개인별 지원체계 구축해야
이러한 현실 속에서 24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연석회의, 학내 장애인권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한번 정부와 각 대학에 교육 공공성의 관점에서 배리어프리 환경 구축을 요구했다.
김건수 연석회의 집행위원장은 “온라인 강의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로 장애학생은 비장애인에 비해 학습 성취도가 떨어지고 사회적 박탈감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7월에 교육부와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현재의 부분적 대처로는 문제가 종식될 수 없다. 게다가 수도권 외 대학은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으나 제대로 된 실태자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수 이화여대 ‘행동하는 이화인’ 또한 “온라인 수업 이전에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던 장애학생의 교육권이 온라인 수업 이후에 더 하락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교육공공성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겠다던 정부 정책이 실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예산을 이유로 시혜적 지원에 그치고 있고, 정부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장애학생 당사자와 대학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적극적 예산 배정과 신속한 법 개정으로 교육공공성을 실현하라”고 밝혔다.
유금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코로나19로 드러낸 대학교육의 열악함, 교육 공공성이 답이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를 위해 유금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장애인의 고등교육이 명시되어 있는 특수교육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유 활동가는 “현재와 같은 소비자 부담식의 고등교육의 장에서 장애인의 교육권은 나아갈 수 없다”면서 “대학 내 장애학생지원체계를 의무화하고, 장애학생에 대한 전문성과 연속성 있는 개인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따라서 이들은 △국정감사 기간에 1학기 온라인 강의 실태조사를 통한 장애인 대학생의 피해 확인 및 대책 강구 △특수교육법 개정 논의에 장애인 대학생 참여 보장 △학내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예산 배정 △교육부와 장애인 대학생 간의 논의 테이블 구성 등을 요구했다.
출처: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5118&thread=04r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