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45개 텐트, ‘집단감염’ 신아원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다
하현덕 기자
등록일: 2020년 12월 29일
또 집단감염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서울시는 코호트 격리 조치
코로나 감염에도 집단 거주 중… 확진자·비확진자가 한 시설에
장애계 “긴급 탈시설을 통해, 확진자·비확진자 분산해 지원해야”
서울시, ‘긴급 분산하겠다’면서도 ‘긴급 탈시설 법적 근거 없다’ 난색
서울시청 앞에 늘어선 45개 텐트 행렬. 텐트마다 ‘지금 당장! 긴급 탈시설 이행’이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 팻말이 붙어 있다. 사진 허현덕
또다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7개 장애인권단체는 29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신아원 거주인의 ‘긴급 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에서 내려 텐트 안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 허현덕
- 또 일어난 장애인수용시설의 집단감염… 그러나 코호트 격리조치
장애인수용시설에서 또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났다. 서울 송파구의 신아원에서 60명(12월 29일 기준)의 거주인과 종사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아원 내에는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과 보호작업장이 있는데, 120여 명이 수용된 거주시설에 확진자가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진 판정을 받은 당일인 지난 26일, 신아원은 코호트 격리 조치됐다. 현재 확진자와 비확진자가 한데 섞여 살고 있다.
또 다시 발생한 거주시설 집단감염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등 7개 장애인권단체는 29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신아원 거주인의 ‘긴급 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45개의 텐트를 설치해 긴급 탈시설, 나아가 모든 서울시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촉구했다. 45개의 텐트는 지난 26일 신아원에서 처음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를 의미한다. 이날 경찰은 텐트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인 힘을 동원했고, 일부 경찰은 텐트 안의 시트를 찢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문애린 서울장차연 대표는 “우리의 요구는 선명하다. 당장 신아원 전원에 대해 ‘긴급 탈시설’을 이행하라는 것이다”라며 “코로나19의 위험 상황에서도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천막 농성을 강행하는 것은 더 이상 수용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을 보고 있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장애여성공감은 ‘서울시 거주시설 연계사업’으로 신아원 거주인들의 탈시설 지원 활동을 하던 중 이번에 발생한 집단감염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름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일년 내내 신아원에서는 시설 안 방역을 이유로 탈시설 자립생활 지원을 막아 거주인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설종사자는 지역사회에서 출퇴근했다”라며 “정부는 코로나19 재난 앞에 장애인수용시설 안 장애인의 불평등한 조건을 더욱 분명하게 구분 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신아원에 계신 거주인들은 수십 년간 시설에서 살아서 건강이 좋지 않거나 노인인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오늘 거주인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6명의 비확진자가 한 개의 방에 함께 있다고 한다”라며 “감염병에서 적절한 거리두기조차 담보되지 않는 집단수용시설에 그들을 방치할 게 아니라 즉각적인 탈시설 계획을 세워야 한다”라고 거듭 촉구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7개 장애인권단체는 29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신아원 거주인의 ‘긴급 탈시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서울시청 앞에서부터 시작한 45개 텐트 행렬은 서울도서관 앞까지 늘어섰다. 사진 허현덕
-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47%가 거주시설인, ‘긴급 탈시설’ 향한 세계의 목소리
집단거주시설 내 집단감염은 해외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가 26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요양시설 △정신병원 △장애아동 기숙학교 등 장기·집단시설을 조사한 ‘케어홈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통계(2020년 6월)’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중 집단시설 거주 사망자가 약 4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코로나19 첫 사망자 또한 청도대남병원 폐쇄 정신병동에 수용된 장애인이었다. 이후에도 집단시설의 감염은 계속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는 탈시설워킹그룹이 꾸려졌고, 이들은 현재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고 있다. 긴급 탈시설은 재난 상황에서 시설에 있는 장애인이 격리조치가 아닌 단기간이라도 시설에서 나와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지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긴급 탈시설의 핵심요건으로는 △주택 △활동지원 △장애연금(소득보장) △동료지원 등이 꼽힌다.
- 한국에서도 ‘긴급 탈시설’ 목소리 높지만 정부는 코호트 격리조치 고수
그러나 한국 정부는 시설 내 집단 감염이 일어나면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코호트 격리를 내린다. 지난 10월 여주 라파엘의집 거주인 20여 명이 확진자가 됐을 때도 여주시는 코호트 격리조치를 했고, 이번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신아원에 코호트 격리 조치를 내렸다. 이러한 정부 인식은 지난 2일 열린 제1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 회의 사이드이벤트에서의 신용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신 과장은 “취약한 장애인 거주인을 위해 예방적 코호트격리로 감염병을 예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장차연 등은 성명에서 “코호트 격리조치는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수용된 사람들을 포기하고 위험시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격리와 배제의 장치”라고 비판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정부와 서울시는 코로나19에 대한 장애인 지원 대책을 만든다고 하나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라며 “코로나19 사망자의 21%가 장애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에서 죽어가는 것을 방조하고 있는데,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살인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권덕철 복지부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의원은 코로나19 전체 사망자의 21%가 장애인이라고 밝히며, 이처럼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은 ‘K방역’에 장애인이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농성 천막을 치려는 장애인권활동가를 경찰이 물리력으로 저지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서울시청 앞을 빼곡히 막아선 경찰들. 사진 허현덕
- 서울시 ‘긴급 분산조치’하겠다면서 ‘긴급 탈시설’에는 난색
장애계 대표단은 서울시에 신아원 거주인에 대한 즉각적이고 임시적인 ‘긴급 탈시설’ 이행을 요구했다. 확진자는 장애유형별 특성을 고려해 치료 계획을 수립하고, 비확진자에 대해서는 1주택 2인 이하의 지원주택·자립생활주택 등의 긴급 임시거주공간을 마련해 분산조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후 긴급 지원인력을 배치해 24시간 1대1 개별지원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긴급 탈시설 이후에는 개인별 탈시설지원 계획을 수립하여 중점적인 탈시설 계획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나아가 장애계는 중증장애인 감염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과 서울시가 장애인거주시설 신규입소에 ‘제한’이 아닌 ‘금지’를 즉각 선언하고,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를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시는 면담에서 장애계 대표단의 의견 대부분을 수용했다. 다만 ‘긴급 탈시설’이라는 용어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긴급 분산조치’로 명명했다. 서울시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승인을 받아 거주인 전원에 대해서 긴급 분산조치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장애계는 서울시의 의견을 수용하되, 앞으로는 중앙방역대책본부를 향해 긴급 탈시설 이행을 위한 강력한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청 정문 앞에 모여든 45개 텐트. 서울시 관할 장애인거주시설 45곳에 있는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김필순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