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정부부처 장관 면담 촉구하며 왕복 6차선 도로 점거
경찰, 과잉진압하며 폭력행사
장관 면담 약속은 못 받아냈지만 “끝까지 투쟁할 것” 결의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 활동가 200여 명이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한누리대로 왕복 6차선을 막고,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활동가들은 20일 오후 1시 20분경, B1버스와 B3버스를 한 대씩 점거하고, 주요 정부부처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 여러 장을 펼쳤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은 버스 밑으로 기어들어가 버스의 출발을 막았다. 그사이 다른 활동가들이 버스 두 대에 피켓 수십 장을 붙였다. 이후 왕복 6차선 전체를 점거하자 차량 수십 대가 진입을 방해하지 말라며 경적을 울려댔다.
이 과정에서 경찰 수백 명이 출동해 활동가들을 과잉 진압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활동가를 향해 “못 움직이게 휠체어 잡아”라고 하며 휠체어를 통째로 들어서 활동가를 끌어냈다. 경찰은 한 활동가의 목에 감겨 있는 쇠사슬을 무차별하게 양옆으로 잡아당겨 위험한 상황을 만들거나, 장애인 활동가를 향해 “장애인 쳐다보지 마. 관심 주면 더 해”라며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일삼았다. 일부 활동가는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에 신체일부가 긁혀 다치기도 했다.
한 시민은 장애인이 버스를 왜 못 타냐고 활동가들에게 항의하거나 장애인콜택시를 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을 경유하는 B1버스와 청주시까지 가는 B3버스는 전부 비장애인만 탈 수 있는 ‘계단버스’다. 활동가들은 이 버스를 ‘차별버스’라고 부르며 점거했다.
- 6차선 막고 4개 정부부처 장관 면담 요구하는 이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B3버스 밑으로 기어들어가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차별버스’임을 알리며 차량의 운행을 저지했다. 이 회장은 “투쟁을 해야만 우리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어주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각 장관은 어서 나와서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각 부처 장관 면담과 함께 △보건복지부는 UN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탈시설’ 용어 부정 말 것 △고용노동부에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제도화 및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 △국토교통부에는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및 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차별 철폐 △기획재정부에는 지방정부에 예산 떠넘기기 그만하고 장애인예산을 책임질 것 등을 요구했다.
복지부는 현재 ‘탈시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탈시설지원법 발의안에 있는 ‘10년 내 탈시설 추진’ 조항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지부가 장애계 대표단과 지난달 진행한 면담에서 장애계가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냐고 재차 질문했지만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은 ‘국장 선에선 결정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에 관해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은 “복지부는 시설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간 복지부는 장애인의 삶을 장애인거주시설에 떠넘겨 왔다”면서 “‘탈시설’이란 말을 받아들이게 되면 복지부는 장애시민을 향한 지원을 더욱 적극적으로 책임 있게 해야 하므로, 탈시설이란 말을 피하고 ‘지역사회 통합’이란 말로 뭉뚱그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고용노동부를 향해서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도입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그동안 중증장애인은 비장애인 관점에서 ‘노동 능력이 없는 비경제활동 인구’로 취급돼 왔다. 일을 하더라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편견 때문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면서 “이러한 현행 제도는 장애인 차별의 기반이 된다”며 고용노동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도 여전히 요원하다. 올해는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주년이지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장애계의 요구였던 ‘저상버스 100% 도입’은 되지 않았다. 이날 장애인 활동가들이 B1버스와 B3버스를 점거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두 버스는 저상버스가 아니라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탈 수 없다.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는 “이처럼 장애인은 버스를 탈 수 없어 대중교통수단 대체제로 장애인콜택시가 도입됐지만 이 또한 이용이 어렵다. 전남의 경우 오후 6시 이후로는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지 않기도 하다”면서 “장애인콜택시 운영이 지자체 책임으로 떠맡겨져 있어 지역 간 편차가 매우 심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