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촉구하던 활동가 4명 연행
기다림 끝에 만난 권덕철 장관 “면담 날짜 잡겠다” 약속
“1,842일의 광화문 농성에 대한 복지부 장관의 대답인가?” 개탄
단순 면담요청에 연행까지?… 남대문경찰서 지나친 대응 규탄
2일 오전,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면담을 촉구하며 기습 시위를 벌인 장애인운동 활동가 4명이 연행 6시간 만에 풀려 났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연행을 규탄하며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이 또다시 무리한 강경 진압을 하는 폭력적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은 2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했다.
“거주시설 개편은 탈시설이 아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하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
회의가 열린 연회장에서 활동가 5인이 든 손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권덕철 장관, 꼭 만나 달라”고 큰소리로 호소했다. 그러나 남대문경찰서는 공동퇴거불응죄로 휠체어를 탄 이형숙 회장을 제외한 비장애인 활동가 4명을 강제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휠체어 뒷부분을 강제로 낚아채서 휠체어가 뒤로 넘어질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여성 활동가의 팔을 등 뒤에서 비틀어 붙잡으면서 폭력적으로 연행하기도 했다.
모든 활동가가 연행된 후 홀로 남은 이형숙 회장은 회의장을 나오는 권덕철 장관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장애인정책국에서 수십번 만나도 장관님 바쁘다고 면담 날짜 안 잡아준다.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겠냐”며 장관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이에 권 장관은 “제 일정은 저도 모른다. 실무자와 이야기하라”며 답을 하다가 거듭된 호소에 “(면담 날짜 잡도록) 그렇게 하겠다. 장애인정책국에 이야기하겠다”며 2분 30초가량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떠났다.
- ‘거주시설 개편’은 수용시설 정책 연장일 뿐 탈시설 아냐
이들이 권덕철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이유는 오는 8월 발표될 장애인탈시설로드맵이 거주시설 개편에 그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9조에는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19조 일반논평5에서는 탈시설의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장애계는 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을 기대했다.
하지만 8월 발표를 앞둔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에는 거주시설 개편이 주요하게 담길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조치에 해당한다. 협약 일반논평 탈시설 전략에서는 시설과 연계된 ‘위성’ 생활환경, 즉 아파트 또는 단독 주택 등 개인생활 외관을 띠면서 사실은 시설을 중심으로 한 생활환경 조성을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조치로 명시하고 있다.
- 단순 면담요청에 연행까지?… 남대문경찰서 지나친 대응 규탄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도 앞두고 있다. 따라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제시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마땅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지난 3월 16일부터 이룸센터 앞에 농성장을 꾸리고 권덕철 복지부장관 면담을 요구해왔다. 이들의 요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 탈시설지원법 제정,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이다. 그러나 면담요구에 복지부는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정당한 요구에 대한 답이 강제연행뿐이라는 사실에 활동가들은 망연자실했다. 전장연은 2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연행된 활동가 4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우리가 이룸센터 앞에서 100일 넘게 농성을 벌이며 보건복지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회의장에 얼굴이라도 보러 간 게 그렇게 잘못인가”라며 통탄해했다.
남대문경찰서는 기자회견을 하는 내내 활동가들의 진입을 막아 대오를 분리시키고, 활동가들의 작은 움직임도 무리하게 강경 진압을 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활동가가 오가도 못하고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자회견 주변을 경찰버스로 막아서 시민들이 볼 수 없도록 차단하기도 했다.
- 석방했지만, 남대문경찰서 무리한 강제연행 사과 받을 것
한 시간가량 활동가들과 경찰의 대치는 계속됐다. 남대문경찰서는 3시경 4명의 활동가를 모두 석방했다. 활동가들은 연행 과정에서 20명 정도의 경찰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바지를 잡아끌어 큰 치욕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호텔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시끄럽다고 해서 퇴거요청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도 지나가는 시민 중 한 명이다”라며 “우리가 1842일간 광화문에서 외쳤던 장애인의 권리, 그 이야기는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투쟁의 무게를 호텔 관리인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는 결코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그 이야기가 잘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는 “장관에게 만나달라고 외친 게 연행될 사유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거대한 호텔 회의실과 복지부 장관만을 지키는 게 경찰이 할 일인가?”라며 “우리나라가 거주시설에서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는 장애인이나 소수자를 위한 나라는 아닌 게 틀림없다”라고 비판했다.
이형숙 회장은 “5명의 동지와 함께 손피켓을 들었는데, 나 빼고 4명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라며 “손피켓 들고 구호 몇 번 외쳤다고 강제연행시킨 남대문경찰서는 장애인을 차별했고, 장애인인권 운동을 조롱했다. 공개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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