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클라우츠 라흐비츠(II 대표), 아나 루시아 아렐라노(IDA 의장), 림 푸에이 티악(ADF 공동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장애’에 국경은 없다. 아프리카 평원부터 남미의 정글, 뉴욕의 빌딩숲에도 장애인은 산다. 그래서 장애는 국제사회가 함께 다뤄야 할 ‘글로벌 이슈’다. 시사저널 ‘사선(死線) 6465’ 기획취재팀이 고발한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의 ‘복지 절벽’ 문제도 마찬가지다.(시사저널 1573호 특집Ⅰ 기사 참조) 이미 세계 유수의 국가가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고민하며,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과연 국경 밖 다른 나라에서는 장애인을 둘러싼 각종 현안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동북아 장애컨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세계 장애 관련 단체 리더 3인을 지난 11월6일 만나 인터뷰했다. 장애인 관련 문제를 묻자, 이들은 한목소리로 “Nothing about us, without us(당사자를 배제하고 당사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없다)”를 해답으로 내놨다. 장애인들이 정치의 주체로서, 관련 정책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또 “장애는 더 이상 민간의 봉사로만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정부에서 장애인 복지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 장애인 문제는 세계 공통의 숙제
Q. 반갑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클라우츠 라흐비츠(Klaus Lachwitz, 이하 클) “유엔 산하 조직인 인클루전 인터내셔널(II·Inclusion International)의 대표로 있고 독일인이다.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 국가의 장애인·전문가 등과 교류하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쌓아가고 있다.”
아나 루시아 아렐라노(Ana Lucía Arellano, 이하 아) “국제장애인연맹(IDA) 의장이다. 에콰도르에서 왔다. IDA는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1999년 설립됐다. 전 세계 8개의 국제 장애인단체와 6개의 지역단위 기구로 구성돼 있고 국제 장애 운동을 이끌고 있다.”
림 푸에이 티악(Puay Tiak Lim, 이하 림) “아세안장애포럼(ADF)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싱가포르인이다. 많은 동료들과 자원봉사자들, 장애 당사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의 많은 장애 관련 조직과 단체(176개)가 우리 단체에 가입돼 있다.”
Q 장애 관련 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난 인권변호사다. 사회적 약자와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 그래서 늘 장애인을 위한 활동에 관심 가져왔다. 특히 국제법에 관심이 많았고, 국제적 연대활동에 참여하다가 아내도 만났다. 두 번째 이유는 아내의 여동생이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만났을 때 아내의 여동생은 아버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당시 아버님의 나이가 여든을 넘었었다. 그녀를 홀로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버님이 도움을 요청했고, 그녀를 돕게 됐다. 이때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이후 지인을 통해 독일의 지적장애인협회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일하게 됐다. 그렇게 33년간 활동해 왔다.”
아 “난 24세 다운증후군 아들을 둔 엄마다. 아들 덕분에 나는 라틴아메리카 장애단체(RIADIS)의 회장이 됐다.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의견이 정책에 포함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세계 곳곳에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목소리가 잘 전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림 “어렸을 때부터 걷는 데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자라는 과정에서 장애인이라고 차별받은 적이 한 번도 없더라.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1980년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돌아왔을 때, 그동안 나를 도와준 사회에 무엇인가 갚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장애 이슈에 관심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다.”
Q. 한국에선 장애인의 고령화가 사회적 화두다. ‘노인 장애인’에 특화된 정책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국 상황은 어떤가?
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고령 장애인에 한정된 이슈도 아니다. 이는 결국 나라가 늘어나는 노인들을 어떻게 케어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독일도 이와 관련해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예컨대 지적장애를 앓는 노인이 있다면 어떤 가정은 자녀가 직접 도울 수도 있겠지만, 독일의 경우 핵가족 사회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 집에 혼자 남겨진 경우가 많다.”
아 “고령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 없는 것은 비극이다. 안타깝게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에는 고령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제도도 관심도 없다. IDA가 장애인 고용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데, 아직 고령 장애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빈곤에 직면해 있으며 이 탓에 노인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심각하다. 고령 장애인이 수당은커녕 좋은 직업도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나이 든 장애인들은 소외되고 혼자 살고 집에 방치된다.”
림 “싱가포르는 고령화가 굉장히 빠르다. 아마 한국보다도 빠를 것이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장애가 있든 없든, 질병이 있든 없든 모두 ‘에이징 피플(Aging People)’이라고 칭하고 그들을 위한 통합 사회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Q.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문제를 푸는 순서가 중요할 것 같은데. 고령 장애인에게 가장 시급한 정책은 무엇일까?
클 “국가가 요양병원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고령 장애인이 혼자 있게끔 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서 다시 돈의 문제로 넘어간다. 케어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요양보호사들의 급여가 너무 적다. 결국 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고령 장애인 문제는 절대 자원봉사 영역 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 “노인들의 재교육을 돕고, 그 가족을 도와서 가족들이 노인을 부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답을 한번에 찾긴 어렵다. 혼자 해결하기 벅찬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같이 일하면 된다. 라틴아메리카만 놓고 본다면 유럽장애포럼에서 좋은 정책들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계속 체크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국가나 단체 간 콜라보레이션(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령 장애인들이 고립되지 않게끔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
Q ‘복지의 나라’ 싱가포르는 어떤가. 고령 장애인을 위한 제도도 완비됐을 것 같은데.
림 “싱가포르에는 장애인 그리고 고령자를 위한 정책이 대부분 마련돼 있다. 건강관리를 위해 무상 의료 서비스도 지원하고, 사소한 것이지만 숙소 체크인이나 대중교통을 활용할 때 늘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식이다. 아픈 이를 돕는 케어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령 장애인 스스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게 지원해 줘야 한다.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게끔 나라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장애인 정책, 장애인도 같이 만들어야
Q. 장애계의 미래 세대 화두는 무엇이라고 보나?
클 “교육 문제다. 특히 독일의 지적장애인은 대부분 특수학교에 다니거나 ‘그룹 홈’(소규모 시설 또는 장애인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가정)에 거주한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은 (비장애인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장애인 고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노동시장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다행히 독일에서는 장애인의 경우 20년간 일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경제적 지원은 잘돼 있다.”
아 “고령 장애인처럼 여성 장애인 역시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IDA에는 이를 위한 국제적 연결망을 마련해 뒀다. 또 2010년 창설된 ‘UN WOMEN’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여성 장애인이 국제 장애단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림 “아세안장애포럼은 작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마스터 플랜’을 정했는데, 핵심 주제로 아세안의 각 정부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했다. 바로 경제, 정치 참여, 사회문화적 능력 배양, 교육, 여성 장애인 인권, 아동 장애인 인권, 장애인 고용 등이다. 또한 이동편의 증진, 의사소통 참여, 시각장애인의 SNS 참여 등의 이슈도 있다. 이들 중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이슈는 장애인 교육 참여, 장애인 고용, 여성 장애인 인권 등이다. 앞으로 6년간 아세안장애포럼이 중요하게 다룰 의제다. 정부, 지역사회, 민간 영역(PPP·People-Private-Public sector participant)과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Q. 장애인 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클 “유엔의 CRPD(장애인권리협약)가 10년 전 체결됐고, 이후 독일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 이상 독일에서 장애인은 차별받지 않는다. 꼭 장애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나 사회 전반 곳곳에 반드시 장애인이 포함돼 의논하고 같이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에서 장애 관련 커뮤니티가 ‘모든 사람은 각자의 수용능력이 있다’는 성명을 낸 적이 있는데 공감한다. 지적 장애나 정신장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아프면 병원으로 보내는데, 그 순간 장애인은 자유를 잃는다. (이런 방식보다) 그들이 배우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
아 “장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자면 ‘Inclusive(함께하는 것)’다. 그리고 각국 정부가 ‘Inclusive’를 이해하게끔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장애인 단체의 최종 목표는 ‘함께’가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단체와 지역이 장애인들과 함께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과 그 가족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슬로건은 ‘Nothing about us, without us’(당사자를 배제하고 당사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없다)다. 이 문구 안에 답이 있다.”
림 “Ana 의장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을 만드는 의사결정 과정에 늘 장애인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장애인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사자를 배제하고 당사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며, 사회 발전의 한 부분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Leave no one behind’(아무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 정신이 중요하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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