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론 대출받아 활동지원 시간 메꾸는데… 재심사 결과 ‘시간 삭감’
“내 장애는 그대론데 왜 활동지원 시간은 깎이는 거죠?”
중증 뇌병변장애인, 종합조사표 재심사 결과 활동지원 1등급→6구간 폭락
등록일 [ 2020년03월06일 14시09분 ]
2월 초, 오 씨가 받은 활동지원등급 갱신 결과 통지서. 통지서에는 ‘활동지원등급: 1등급(가형)→6구간(가형)’이라고 적혀 있으며, 수기로 ‘특례적용으로 기존시간유지’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가형’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의미한다. 사진제공 오아무개 씨
“저는 평생을 중증 뇌병변장애인으로 살아왔는데, 단지 조사표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활동지원 시간이 깎일 수 있나요?”
한 중증 뇌병병장애인이 장애등급제 폐지 후 변경된 종합조사표에 따라 활동지원 등급 갱신을 받았지만, 시간이 대폭 삭감되어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 강북구에 사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오아무개 씨(48)는 현재 월 781시간(보건복지부 401시간, 서울시 350시간, 강북구 3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종전 인정조사표 기준으로는 1등급 독거특례를 받아 470점 만점 중 435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월 781시간에 달하는 활동지원 시간이 측정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하루 24시간의 활동지원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저녁, 주말, 공휴일에는 활동지원 수가가 높게 측정되는 가산급여로 인해 활동지원 급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 씨는 매달 약 60~80시간을 사비로 채우고 있어 가산급여가 책정되는 ‘빨간 날’이 무섭다고 털어놨다.
오 씨는 현재 부족한 활동지원 급여를 카드론 대출로 메꾸고 있다. 작년에만 네 차례에 걸쳐 총 800만 원 가량 카드 대출을 받아 활동지원 급여로 지출했다. 20%가 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할 정도로 오 씨에게는 24시간 활동지원이 절박하다.
그러던 작년 7월, 오 씨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중증장애인들이 더 나은 활동지원을 받게 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듣고 크게 기뻤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활동지원 시간이 늘게 되면 더 이상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대도 컸다.
그러나 오 씨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재심사 결과 오히려 활동지원 시간은 대폭 삭감됐다. 작년 12월, 장애등급제 폐지 후 새로 만들어진 종합조사표로 활동지원 갱신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오 씨의 활동지원 등급이 1등급(월 401시간)에서 6구간(월 330시간)으로 하락하면서, 약 71시간이나 삭감된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로부터의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되면, 시와 구 단위에서 받던 활동지원 시간도 줄줄이 삭감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보건복지부 고시 중 특례조항(제2019-127호)에 따라 기존에 활동지원급여를 받고 있던 사람의 경우, 활동지원 구간이 하락하더라도 갱신 기간 3년 동안에는 기존 급여량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오 씨도 특례적용을 받아 3년 동안 기존의 활동지원 시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활동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구간이 하락한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어 오 씨는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
국민연금공단에 이의신청 문의했는데 ‘잘못된 정보 제공’ 빈번
2월 초, 오 씨가 국민연금공단 강북지사에 이의신청을 문의하자 강북지사는 ‘등급 재판정을 받은 날로부터 한 달 안에 신청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사 결과 통지서가 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받아낸 탓에 오 씨는 마음이 급해지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2019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안내’에 따르면 심사 결과를 통지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관할 주민센터와 강북구청도 석 달 안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공단의 잘못된 정보 제공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공단 본사는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3년 동안의 특례적용을 받은 경우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단 측에 따르면 특례적용이라는 ‘행정처분’을 통해 기존 활동지원 급여를 그대로 적용받게 되어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오 씨는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마이너가 보건복지부에 확인한 결과, 특례적용을 받을지라도 구간이 하락한 심사 결과에 대해서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안내’ 중 ‘장애인활동지원 주요 변경사항 비교표’ 갈무리. 왼쪽 표는 인정조사표에 따라 2019년 6월 30일까지 적용되는 기준이며, 오른쪽 표는 장애등급제 폐지 후 종합조사표에 따라 2019년 7월 1일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왼쪽 표 상단에는 ‘기본급여’가 적혀있고, ‘활동지원 등급’이 총 4등급으로 나눠져 각 구간마다 ‘인정점수’가 매겨져있다. 오른쪽 표 상단에는 ‘활동지원급여’가 적혀있고, ‘활동지원급여의 구간’이 총 15구간으로 나눠져 각 구간마다 ‘종합점수’가 매겨져있다. 오 씨는 기존 ‘활동지원 등급’에서 1등급(435점)을 받았지만, 재심사 후 ‘활동지원급여의 구간’에서 6구간을 받게 되었다.
비굴한 감정 삭이며 홀로 강북구 활동지원 예산 따냈는데… 이제는 삭감이라니
오 씨는 지난 8년 동안 강북구청을 오가며 활동지원급여 구지원 예산을 따내기 위해 홀로 싸워왔다. 그간 강북구에서 활동지원이 나오지 않아 여러 번 구청에 문의했지만, 구청에서는 예산이 없어 내년도 예산 편성을 기다려보라고 하거나, 이미 구 지원이 나오고 있다고 거짓말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가을, 서울시에서 활동지원 24시간 지원 대상자를 모집하자, 이를 알아보던 중 오 씨는 구 지원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오 씨는 강북구청을 수차례 오가며 항의한 끝에 구청장을 직접 만나 중증장애인을 위한 강북구 활동지원 예산을 마련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마침내 오 씨를 포함해 강북구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 28명이 강북구로부터 월 30시간의 활동지원 시간을 더 받게 되었다.
오 씨는 이 과정에서 “비굴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8년 동안 생존을 위해 활동지원이 필요한 상황을 강북구청에 호소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외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 씨는 “공무원들이 종종 발달장애인과 같이 다른 장애 유형의 사람들도 활동지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라며 “서로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왜 굳이 비교하면서 알려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작년부터 구지원을 받게 된 기쁨도 잠시, 오 씨는 삭감된 활동지원 등급에 대한 이의신청을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의신청이 좌절될 경우, 3년 뒤에 활동지원 시간을 필요한 만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오 씨는 “구지원도 겨우 1년째 받고 있는데 ‘등급하락’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이제는 더 이상 삶의 희망도 없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활동지원 24시간 문의에 강북구청 “그런 사람은 시설 입소해야”
오 씨가 종합조사표에 따라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된 상황에 관해 묻자 강북구청 관계자는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예전 인정조사표를 기준으로 발달·정신장애인과 같이 활동지원 점수를 못 받았던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더 받게 되었고, 지체장애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간이 삭감되었을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강북구청 측은 이미 오 씨가 24시간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야간, 주말, 공휴일의 추가수당을 고려하면 24시간이 아니라고 설명하자 “그 정도로 필요한 분들은 시설로 입소하는 게 맞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활동지원은 직장이나 학교생활을 할 때 활동을 보조하는 것이지, 잠잘 때도 활동지원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라며 응급안전 서비스와 야간 순회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러한 강북구청의 답변을 전해 들은 오 씨는 “힘들게 자립해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나는)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취침 중 욕창 발생을 막기 위해 체위변경을 수시로 해야 하고 천식으로 인해 늘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라며 야간에도 활동지원이 필요한 상황을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종합조사표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동지원 급여가 늘어나는 구조이지만, 개별 사례에 변경이 생기면서 점수가 깎일 수 있어 특례를 적용하는 것”이라며 종합조사표의 한계를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종합조사표가 개선될 여지를 묻자 “현재 ‘종합조사 고시개정위원회’에 장애인단체들도 참여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반적인 제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확답을 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출처: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437&thread=04r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