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한 욕심
한혜경 기자
등록일: 2020년 11월 6일
[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시각장애인인 나는 안내견과 함께하고 있다. 안내견의 보조가 있어 나는 안전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안내견을 동반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가게는 많지 않다. 소비를 하러 들어가도 나는 ‘을’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놓인다. 가게 내에 있는 베란다에 보일러를 틀어줄 테니 다른 손님들 눈에 띄지 않도록 거기 앉아서 음식을 먹으라던 음식점부터, 개를 데리고 다닌다며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던 곳, 도마뱀이며 새도 안 되는데 덩치 큰 개가 되겠느냐고 호통치던 곳 등 다양한 형태의 거부를 당했다. 재미있게도 안내견은 들어가 한 자리에 앉으면 조용히 엎드려 기다리기 때문에 내가 착석한 후 들어온 손님들이 안내견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안내견은 음식점이나 카페 안에서 돌아다니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당연히 짖거나 물지 않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 출입 허가증을 받을 수 있고, 안내견을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령도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40조 ③누구든지 보조견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손님의 선호도에 따라 새로 오는 손님을 받을지 말지 정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보통 업주들은 ‘손님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그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한다. 정작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같은 공간에 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데도 말이다. 그 밖에도 ‘구석에 앉아라’, ‘손님 없는 시간에 와라’, ‘문 앞에 앉아라’, ‘개는 밖에 묶어둬라’ 등 요구 사항도 가지각색이다. 그 모든 말을 들으며 밥 한 끼 먹기 위해서 나는 죄인이 되어야 했다.
안내견은 물건이 아니다. 밖에 묶어둘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시각장애인을 가장 적절하게 도와줄 수 있는 존재이다. 안내견은 가게뿐 아니라 비행기나 선항에서도 파트너와 떨어지지 않도록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그만큼 안내견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국가가, 기업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내견을 지나치게 반기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식사하는 내내 안내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몇 살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견종이며 훈련 과정 등을 물어보는 사장님이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다. 거래처와의 식사 자리에서 안내견의 견주로서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느라 정작 거래처와 중요한 얘기를 못 하기도 했다. 어려운 일인 줄 알지만, 차별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가게 문을 열고 드나들었을 다른 손님들과 같이 장애인도 한 명의 소비자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가게를 이용하며 좌절했던 또 한 가지 상황은 무인 결제 단말기, 즉 키오스크 앞에서다. 시각이 필수인 키오스크가 도입됨에 따라 시각장애 학생들은 학생식당을 포기하고 빵이며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학식뿐 아니라 카페나 음식점 등 다양한 가게에 점원 대신 키오스크가 늘어났고,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끼 식사나 한 잔의 커피도 사마실 수 없게 되었다. 직원 호출 버튼이 있는 키오스크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았다. 하지만 키오스크의 몸체를 전부 더듬어보지는 않기 때문에 호출 버튼을 끝내 못 찾는 경우가 태반이다. 직원 호출 버튼이 화면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고, 터치가 아닌 물리적으로 누르는 형태라면 한결 낫지만, 그런 키오스크는 아주 드물다.
점자 메뉴판은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훨씬 많다. 감사하게도 예전보다 점자 메뉴판이 늘어나는 추세이나, 점자 메뉴판을 구비하는 것은 업주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점자를 모르는 비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언제 올지 모를 몇몇 손님을 위해 계속해서 투자하고 신경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점자 메뉴판만 따로 만들지 않고 글자와 점자가 함께 적힌 메뉴판을 메인으로 사용한다면? 해당 가게를 한 번 더 기억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어린아이들에게는 처음으로 점자를 경험하게 해준 가게가 될 테고 메뉴 위에 오돌토돌 얹혀진 점자를 눈으로 보고 만져도 보면서 그것을 이용할 시각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모두에게 상기시키는 공간이 될 테니 말이다.
점자 메뉴판이 없으면 일일이 물어보는 길뿐이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손님을 위해 메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는 업주는 드물었다. 기다리는 다른 손님의 눈치를 봐야 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점자 메뉴판이 필요하다. 모든 메뉴를 읽어보고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 방법은 점자 메뉴판이 유일하다. 프렌차이즈의 경우 인터넷으로 미리 홈페이지를 찾아 휴대전화의 화면 낭독 기능을 통해 메뉴를 파악했다. 홈페이지가 없는 개인 카페나 식당은 대표 메뉴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준비된 소비자로서 가게에 들어가지만, 장애를 가진 소비자들이 방문하기에 준비되지 못한 가게들이 더 많았다.
어렵게 주문을 마친 뒤에도 난관은 계속됐다. 가게가 분주하다 보니 진동벨이나 호명된 번호로 음식을 가지러 가야 하는 곳들이 점점 늘어났다. 시력이 점차 저하되어 완전한 실명을 경험한 나에게는 쟁반을 수평으로 드는 것이 크나큰 미션이었다. 눈이 보였을 때는 1분 안에 척척 해내던 일들임에도 낯선 공간에서 음식을 나르는 것은 남산 산책로 코스를 한 바퀴 걷는 것보다 힘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앉은 테이블의 위치를 기억하며 카운터로 가야 하고, 음식을 든 채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조심조심 기억하는 자리까지 돌아오는 과정이 어려웠다. 사실 내가 음식을 흘리거나 엎는 것보다도 다른 테이블을 치거나 손님에게 피해를 끼칠까 두려운 적이 더 많았다. 등 뒤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에 나는 조바심이 났다. 불쌍하게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을 내 조심스러움이 그들에게도 익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누적될수록 누군가 나를 불편해할까 조마조마해 하거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일상이 그리웠다. 20살이 넘은 나에게 보호자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닌,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물어봐 주길 바랐다. 내가 누군가의 부족함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지 않듯, 그들도 나를 볼 때 장애를 앞세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왜 존중받지 못하는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했다. 그 근거가 내 장애라면, 사람들이 장애인을 왜 불쌍하다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나의 불편함, 조금의 다름이 어떤 근거로 커다란 차별을 일으키는지 알아야 했다. 돌아보면 나는 다수의 비장애인 속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개인의 차원에서 발버둥 친 지난날들의 통증을 애써 무시해왔다. 장애는 나의 의지로 얻은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습관도 아니었다. 씻어버려야 하는 잘못도, 부끄러워야 할 행동도 아니었다. 키가 작고 큰 사람이 있듯, 머리칼이 길고 짧은 사람이 있듯, 장애도 내가 가진 수많은 특징들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국민으로서, 소비자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왜 이리도 많은 차별을 감수하고 살아야 했을까? 사회를 이루는 ‘우리’가 우리의 차원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더 이상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떳떳한 소비자가 되고 싶다. 다름이 잘못이 아니라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하나의 변수가 되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소비자, 거동이 불편한 소비자, 청각적 요소가 아닌 시각적 대화를 나누는 소비자 등 장애인에게도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꾼다. 새롭게 장애를 얻더라도 금방 일어날 수 있는 사회는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을 읽어내리다 그가 가진 절실함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피부색’을 ‘장애’로 바꾸어 보았을 때 내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둔 것 같았다. 그의 연설문의 한 자락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나의 친구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도,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이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필자 소개 한혜경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 강사. ‘한 번뿐인 일생, 우리가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장애인의 인식 개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20대 청년입니다.
출처: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