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10개월, 나는 코로나가 아닌 마스크와 싸움 중
등록일: 2020년 12월 4일
글쓴이: 김상희
[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마스크 그림 아래에 코비드-19라고 쓰여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19 상황이 10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금방 종식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집단 감염이 계속 이어지면서 주변에 누군가가 밀접 접촉자로 통보받았다는 말을 듣는 게 이제 낯설지 않다. 물론 아무리 자주 들어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은 쿵! 내려앉는다. 어쩔 수 없이 조심조심 다니는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하면 동선이 겹치진 않았을까, 가슴 졸인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지난 10개월을 보냈다. 마치 살얼음판 위에 올려져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혹시나 중증장애여성인 내가 밀접접촉자로 분리되어 격리되거나 코로나에 감염되어 모르는 사람들에게 돌봄을 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을 수시로 떠올리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갔음에 안도한다.
그렇게 코로나19는 어느덧 나의 주변까지 파고들어 생활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풍선을 안고 있는 듯, 코로나 상황에서 10개월을 보내며 나는 새로운 불편함과도 마주해야 했다.
- 마스크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는 상황
나는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폐활량 측정 검사를 하면 평균보다 현저히 낮아 호흡기 재활을 권유받곤 한다. 의사 말 안 듣기로는 으뜸이라 그런대로 숨 쉬며 살고 있지만, 큰 수술을 받은 뒤부터는 기관지도 약해져서 온도 변화에 따라 기침이 심해지곤 한다. 그래서 황사가 심한 날이나 바깥 온도가 차가울 때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함에도 숨쉬기 어렵다는 이유로 웬만해선 마스크 없이 생활해 왔다.
이런 나의 고집으로 무슨 일 있어도 마스크 쓰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나, 코로나 상황에서는 마스크가 필수용품이자 최선의 감염 예방 수단이 되면서 스스로 마스크를 구입하는 일까지 겪었다. 이젠 마스크를 쓰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숨쉬기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 대규모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나의 최면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스크가 일상용품이 되어가며 ‘마스크 대란’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사람들의 불만과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이 대란 속에서 나는 다른 불편함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마스크를 사용할수록 어려움은 늘어만 갔다. 게다가 남들이 모르는 ‘보이지 않은 노동’까지 추가되면서.
- 승부가 없는 마스크와의 싸움
현재 나는 온갖 종류의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 숨쉬기가 조금이라도 편하고 안전성이 확보된 마스크를 찾기 위해서다. 숨쉬기 편하면 안전성이 떨어져서 코로나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안전성이 높으면 숨쉬기가 힘들다. 두 번째는 마스크를 쓴 이후로 사람들이 내 말을 더 알아듣기 어려워져서 특수 마스크를 찾기 위함이다. 발음이 정확하지 못해도 입 모양 보고 알아듣는 경우도 많았는데 마스크 때문에 입 모양도 볼 수 없고 발음도 묻혀서 언어장애를 가진 나는 마스크가 의사소통의 답답함마저 안겨 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뇌병변장애로 안면 마비가 있어서 얼굴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마스크가 코에 붙어있지 않고 줄줄 흘러내리기 일쑤이다. 활동지원사가 단 1분도 놓치지 않고 내 얼굴만 보고 있지 않은 이상 실시간으로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내 손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
손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마스크를 스스로 올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손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동작이겠지만, 나는 머리를 숙여 힘이 빠져가는 손을 사용하여 간신히 올려야 한다. 온 힘을 다해 힘들게 올리면 잠시 내 코에 걸쳐 있다가 다시 줄줄 내려간다. 이 동작을 계속하다 보면 남에게 보이지 않은 혼자만의 노동이 되고, 승부가 나지 않은 마스크와의 싸움이 된다. 도대체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코로나19를 상징하는 마스크, 코로나바이러스, 의약품, 두루마리 휴지, 장갑 등의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사진 픽사베이
- 나에게 맞는 마스크를 찾을 수 있을까?
며칠 전에 혼자 지하철을 탔는데 마스크가 벗겨졌다. 마스크 끈이 한쪽 귀에서 빠진 것이다. 애석하게도 마스크 끈을 혼자서 귀에 걸지 못한다. 그런데 마스크가 벗겨지다니!! 큰일 났다 싶었다. 일단 지하철에서 내렸다. 바로 탐색에 들어갔다. 마스크 착용을 부탁할 사람을 매의 눈으로 찾았다. 선해 보이는 중년 여성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죄송한데요, 마스크 좀 씌워 주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버리는 것이다. 마스크가 벗겨지는 일은 그동안 가끔 겪었던 일이고 그동안 사람들이 잘 도와줬던 경험이 있는지라 거절당할지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내 언어장애 때문에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피한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그분께 또박또박 말했다. 그랬더니 혐오의 눈길로 손사래 치며 저리 가라고 하는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마스크를 빨리 써야 하므로 바로 다른 여성에게 부탁했고 군말 없이 씌워주었다. 마스크를 쓰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은 마스크조차 혼자 쓸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와의 접촉이 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거절했던 것인가. 이날 이후로 해당 제품의 마스크를 쓰면 절대 혼자 다니지 않게 되었다. 해당 제품의 마스크는 아직도 집에 쌓여 있다. 택배비 아낀다고 대량 구매한 탓에 소진의 날만 기다리며 울며 겨자 먹기로 쓰고 있다.
이런 불편함을 겪으면서 나는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마스크를 종류별로 사 모으고 있다. 의료비에 이어서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늘어난 셈이다. 지출의 부담을 느끼며 돈은 돈대로 썼지만, 아직도 나에게 맞는 마스크를 찾지 못했다. 심지어 집 한쪽 벽면이 마스크 전시장이 되었음에도 나는 새로운 종류의 마스크를 보면 구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습관처럼 고민하고 있다.
- ‘재앙 속 재앙’을 겪는 사람들
요즘 나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스크 때문에 불편한 이들은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여러 질환으로 마스크를 쓰는 게 코로나 감염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다른 장애 유형을 가진 이들 중에도 말 못 할 어려움이 하나씩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장애상 침이 고여서 자주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은 마스크 쓰는 게 엄청난 곤혹일 것이다. 나 역시 말하다 보면 침을 자주 흘리는데 그때마다 마스크에 묻어나는 침 때문에 마스크값은 부담되지만, 하루의 한 번씩 교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감염의 두려움을 넘어서 다른 두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되고 궁금하다. 이러한 재앙 같은 상황이 그들 혹은 나에게는 ‘재앙 속의 재앙’이다.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또 다른 감염병이 몰려올 수 있다고 한다. 그때에는 또 어떤 상상치도 못한 불편함과 어려움이 함께할까. 그리고 과연 어떤 준비와 고민이 필요할까. 예측불가능한 미래가 더 복잡해졌다.
* 필자 소개 _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