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성인교육 역사
약 30년 전부터 시작된 독일의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의 역사를 놓고 특수교육계 학자들은 뒤늦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오랫동안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해서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학습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게다가 예전에는 대부분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오래 살지도 못했다. 더구나 나찌시대에는 히틀러의 장애인 학살정책으로 그 희생자들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많은 것이 변했다. 60년대와 70년대에 동독과 서독에서는 이들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해 유치원교육과 학교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영역의 확대에 노력을 했다. 나중에는 직업의 영역까지도 중요시 여겼다. 서독의 경우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공장을 중심으로 직업교육이 이루어졌고, 동독은 비교적 가벼운 정신지체 장애인들만 일반 공장에 취업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다가 직업의 영역에서 점차 주거시설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미치는 범위는 여전히 한정되어 있었다. 즉 장애가 가볍거나 중간 정도의 정신 지체 아동들과 청소년들이 그 대상이었다. 동독의 경우, 중증의 정신지체 장애인은 학습능력이 전혀 없다고 단정했다. 서독의 경우는 전통적인 치료교육 학자들에 의해 70년대까지도 여전히‘교육가능성’은 간과 되었다. 그러므로 정신지체 장애인의‘교육의 기회’는 소홀히 취급되었고, 이들의 인지적 능력은 이미 굳어져 퇴행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위한 치료교육적 지원과 장려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원과 장려는 장애인 수용시설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관련 시설들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고 그저 몇몇 인물들의 업적일 뿐, 이론적인 학문적 토대가 빈약해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한 성인교육 요구를 체계화 할 수 없었다.
서독에서 처음으로 학교를 졸업한 정신지체 성인들이 나왔다는 것은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이해가 점차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제야 비로소 성인교육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장애인 성인 교육의 주요 대상은 지체장애인이었다. 1970년대 초에 처음으로 국민대학(Volkshochschule)에서 장애인을 위한 강좌가 하노버,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도시에서 개설되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효과를 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소수의 정신지체 장애인들만 참여했지만, 나중에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의 확대에 큰 자극과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70년대에는‘장려’라는 치료 재활적 교육이 중심에 서 있어 정상적인 삶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위한 실질적인 훈련과 행동치료적 조치들을 중요하게 여겼다.
1979년에 특수교육학자 크렌처(Krenzer)는 특수교육 개론서에서 성인교육과 학교 졸업 후 취업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신지체 장애인의 직업활동을 위해서‘교육’과‘장려’는 같은 뜻으로 쓰였다. 그 전에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성인 역활과 관련해서 주목하지 않았던‘성인교육과 여가활동 장려’라는 영역이 추가되는 기회가 되었다. 위에 언급한 국민대학(Volkshochschule) 이외에도 생활도움의 교육위원회회의로부터 개최된 정신지체 성인을 위한 성인교육이 1972년에 언급되었다. 1년 후 생활도움 연합회에서 분기별로 발간하는 잡지를 보면, 딜렌부르크 국민대학이 제공했던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에 대한 보고가 발견된다. 같은 해에 생활도움 연합회는‘정신지체 성인교육학을 위한 추천들’이란 간행물을 발간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과 조치들은 70년대 말까지도 중증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취학의무’는 1978년까지도 없었다. 반면 독일과는 달리 인접 국가들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미 실시하고 있 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국민대학 혹은 스위스의 취리히 교육클럽 등이다.
드디어 독일에서도 1977년 테오도르-헥켈-교육작업장이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전문적인 성인교육시설로 그 문을 열었다. 이는 덴마크 코펜하겐의‘교육의 해 모델’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1980년대에는 서독의 몇몇 도시들에서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런 조치들은 주로 교회의 장애인 시설들, 장애인 주거시설 및 공장, 장애인도움 연합회 혹은 법인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1981 년 생활도움 하이델베르크는 장애인공장에 다니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첫번째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이는‘장애인 대표’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점차 ‘정상화 원리’와 ‘정신지체 장애인의 성인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하는 시각이 국민대학과 일반교육 시설들에게로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국민대학 뿐만 아니라 초교파적인 기독교 성인교육 법인들까지도 정신지체 장애성인들에게 성인교육을 제공했다(예: Friesland- Modell, Heidelberger Modell).
1984년 올덴부르크에서는 대학교 특수교육학과와 국민대학이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 시작은 모델 프로젝트로‘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강좌’ 이었다. 장애인 도움시설들도 성인교육을 제공했는데, 함부르크에 있는 알스터도르프 재단, 빌레펠트 베텔에 있는 지역국민대학 린덴호프, 브레멘의 마틴클럽 등이 있다. 이러한 시설들이 제공하는 것은 초지역적인 세미나로 정신지체 장애인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인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직업교육작업 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위에 언급한 모델 프로젝트의 특징적인 것은 장애인의 인격형성 계발, 일상생활의 극복 그리고 직업적 통합을 돕기 위해 정신지체 장애인에게도 연수 및 계속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을 위한 일반 성인교육 시설들에 비해 정신 지체 장애인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 이유는 소그룹의 교육, 이동차량의 조직 그리고 장애인 주거시설이나 공장의 직원들과 가족 구성원의 협력과 중재를 위한 활동들을 제공하기 위한 추가비용이 필수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강좌에 강사 한 명이 혼자 진행할 수 없기에 최소 두 명의 강사가 있어야 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여기에 함께 협력하는 보조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제2의 인력으로 장애인을 돕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에 어떤 국민대학들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은 일반교육시설에서 일반강좌처럼 개설될 수 없고, 우선 장애인도움 시설들, 연합회, 법인들에 의해서 제공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모순이 되는 것은‘정상화 원리의 기본강령’과 국민대학의 기본정신과 임무를 무시한 것으로 마치 기본법에 규정된 것처럼‘어느 누구도 자신의 장애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 없다.’는 것에 위배된다.
1984년 생활도움 연합회에 의해‘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강좌개설과 직업교육 이외에도 실질적 도움을 연구하며 여기에서‘성인교육을 위한 기본강령 추천’도 만들다. 첫 강좌들은 우선 획득된 능력을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며, 이어서 자급자족과 자아실현이 주요 내용들이었다.
이러한 위원회가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가 있는데, 이는 장애인들의 바램과 필요를 위한 시각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또한 1982년에 연합국가들에 의해 생겨난 ‘세계 장애인의 10년’행사도 당시에는 지속적인 발전과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일련의 대화, 협의, 토의 등을 거친 후에 1989년 5월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 장려학회’가 설립되었고 1990년부터는 그 명칭을‘성인교육과 장애인 학회’로 변경하였다. 이 학회의 중요한 역할은 전공학문을 자극해서‘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이란 주제로 대학들과 장애인도움 기관 및 시설들에서 관련 연구와 동반 프로젝트를 실시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많은 장애인도움 시설 및 기관들 자체 내에 성인교육을 중요한 구성요소로 받아들이고 제공하고 있다. 80년대에 이 모든 노력을 안내하고 지도한 것은‘정상화 원리’와‘통합’의 사상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성인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런 사상 속에서 일반 교육 법인들은 기본원칙으로‘개방성’을 주장했고 그 결과로 생긴 목표가 장애인을 장애인 시설들에서 나오게 하여 일반사회 속으로 그 자리를 옮겨놓는 것이었다. 여기서‘개별적 통합의 모델’이 나왔는데, 이는 정신지체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일반강좌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수교육학 안에서‘자기결정’논쟁과 함께 이제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관심과 필요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성인교육도 이를 위해 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 게다가‘엠파워먼트(Empowerment) 방법’은 특수교육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점점 약해지는 자기결정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너무 다양하고 다름으로 인한‘개인주의적 성향’들 때문에 무엇이 사회적으로 일반적이고 공통적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특수교육에서 각각의 장애인을 대중 속의 한 인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엠파워먼트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출처: http://www.nise.go.kr/jsp/field/2008-1/16-4.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