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책이 ‘장애인거주시설 1인1실’로 리모델링?
복지부, 지자체에 ‘1인 1실’ 기능보강사업 수요 파악 요청
장애계 강하게 반발… 복지부는 “현황 파악하는 것일 뿐”
등록일: 2020년 03월 23일
지난 20일, 서울시가 ‘장애인거주시설 1인 1실 기능보강사업 수요 파악’을 위해 보낸 메일. 메일 본문에는 “코로나19 관련으로 시설 1인 1실 필요성을 느끼셨는지 복지부에서 청와대가 긴급히 예산 수요를 파악해 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지시한 사항이면 예산 반영되기가 무척 수월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근 보건복지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추경예산 확보를 위해 각 지자체에 ‘장애인거주시설 1인 1실 기능보강 수요조사’를 긴급히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애계가 강한 반발에 나섰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5~6명, 많으면 10명 이상이 한 개의 방을 같이 쓰는 집단생활을 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거주시설은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지로 꼽혔다. 그러자 해결책 중 하나로 ‘거주시설 1인 1실 기능보강’이 제안됐고, 지자체는 지난 20일에 현황 파악을 위한 수요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이번 조치는 시설 내 감염자와 자가격리자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거주시설을 강화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코로나19 긴급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거주시설을 1인 1실로 공사할 수 있도록 기능보강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은 그럴듯한 대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매우 경악스럽고 소름 끼치는 계획”이라면서 “이번 기회를 활용해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좋은 시설’로 리모델링하려는 정책이 아닌가. 그러나 장애인에게 ‘좋은 시설’은 없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거주시설 건물 내 모든 방을 1인 1실로 만든다는 것은 건물 자체의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공사 기간에 시설 입소 장애인들은 어디에 몰아둘 것인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가 앞장서서 코로나19 대응을 명목으로 사립 사회복지법인에 재산 증식을 위한 공공재원을 몰아주겠다는 것”이라면서 “시급한 예산 편성 계획이 오히려 영구적으로 장애인거주시설을 강화하고 시설 이권을 챙기는 졸책으로 변모할 텐데, 대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나온 계획인지 그 정황을 밝혀라”라고 분노했다.
전장연은 이러한 시설 강화 정책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고도 비판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협약 제19조 일반논평5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정부 당국은 시설 수용을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면서 “정부 당국에 의해 새로운 시설이 지어져서는 안 되며, 현 거주자들의 물리적 안전을 위해 급박한 것이 아니라면 기존 시설을 개조하는 것도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전장연은 시설 거주 중증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재난 대응 추경예산으로는 거주시설 기능보강 예산이 아닌 ‘장애인 탈시설 긴급예산’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장연은 “탈시설이야말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준수하는 올바른 결정”이라고 강조하면서, “거주시설 기능보강 예산 수준이라면, 지자체가 아닌 중앙정부 차원에서 코로나19 재난대응 탈시설 긴급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방침이 ‘청와대 지시’라는 이야기가 제기되는 가운데 신용호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은 23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지시는 아니다. 공문이 내려간 것도 아니고 우리가 청와대 보고용으로 수요조사를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 과장은 “현재 노인요양병원 등이 밀집도가 높아 집단감염이 일어나고 있는데, 밀집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현황 파악을 하고 있다”면서 “사회복지시설 전체 쪽을 파악하는데 그중 하나로 장애인시설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장애인시설 중에서는) 십여 군데에서 기능 보강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왔다”면서 코로나19 대응책으로 탈시설 추경예산을 묻는 질문에는 “그런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출처: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497&thread=04r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