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끝나지 않은 싸움
공태윤
불법감금,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500여건의 살인, 암매장...
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모두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참상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3년간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각종 범죄행위는 한 검사의 인지수사와 목숨걸고 탈출한 원생들에 의해 알려져 법의 심판대 위에 올랐다. 그러나 재판 결과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살았을 뿐이다. 대법원은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사회복지사업 등 법령에 따른 정당한 직무”라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사진설명] 좌, 형제복지원 농성장 앞 형제복지원 당시 사진 우,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기자회견(출처:비마이너)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내무부훈령 410호부터 경찰, 공무원에 의한 강제수용까지
그 정당한 직무의 근거는 바로 내무부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이다. 박정희 정권인 1975년 12월 제정된 이 훈령은 이른바 ‘부랑인’ 강제수용의 근거가 된다.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대 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대비해 대대적으로 거리정화사업이 진행되었고 형제복지원은 이러한 배경 하에 설립된 전국 36개의 부랑인 보호시설 중 하나이다. 당시 거리정화사업의 주체는 경찰과 관련 지자체 공무원으로 이들은 근무평점을 위해 거리를 지나던 시민과 하교하던 어린이들까지 무잡이로 잡아들였다. 끌려간 이들은 본인이 왜 끌려갔는지도 모른 채 무자비한 폭력과 배고픔, 강제노역에 놓여졌다.
피해당사자의 명예회복은 현재진행형, 배보상은 아직 요원
형제복지원은 1987년 폐쇄조치되었다. 원생들 중 일부는 다른 시설로, 일부는 귀가조치되었으며 형제복지원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형제복지원이 다시 회자된 것은 25년이 지난 2012년, 피해생존자인 한종선님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2013년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인권침해 진상조사 및 배상 요구, 2017년 국회 앞 노숙농성,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과 2021년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조사 착수까지 피해자들은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왔다. 언론에서 형제복지원을 집중조명하고 장애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았다. 이번 달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배보상은 아직 요원한 현실이다.
국회 탈시설전시회…형제복지원과 탈시설지원법
사진설명] 좌, 형제복지원 건물들을 재현한 모형 우, 건물 앞 원생들이 나란히 앉아 지시를 받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지난 5월 국회에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촉구를 위한 탈시설 당사자 편지 국회 전시회, 우리 함께, 살아나간다’에서 피해생존자인 한종선님의 형제복지원 모형을 볼 수 있었다. 수용소 같은 회색조의 건물들, 건물 앞에 쓰인 ‘소대’ 간판, 건물과 대비해 파란색의 옷을 입고 도열한 원생들. 형제복지원과 장애인 거주시설은 다른 듯 같다. 건물색과 이름, 옷이 달라졌지만 집단거주라는 점에서, 강제노역이 사라졌지만 자기 의사와 상관없다는 점에서 또 같다. 탈시설지원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거주시설협회와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회복지라는 이름 아래 격리, 수용되어야 하는 장애인들의 삶의 변화는 언제쯤 가능할지. 시기는 우리가 얼마나 싸우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